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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생명과 고령화사회

"죽음은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다."

—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영원히 사는 법(Transcend: Nine Steps to Living Well Forever)》 중에서

"Death is a technical problem that can be solved."

인류는 어떻게 오래 살게 되었나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죽음을 피하려 몸부림쳤다. 파라오는 영생을 꿈꾸며 피라미드를 세웠고, 제국의 권력자들은 신에게 제사를 바치며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인류를 가장 무너뜨린 적은 전쟁이 아니라 질병이었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죽였고, 영국은 절반 가까이를 잃었다.1 그 시절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기도뿐이었다.

18세기 백신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천연두(smallpox) 박멸은 그 상징적 승리다. 1967년에만 전 세계에서 200만 명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했지만, 13년 뒤인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의 완전한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2 죽음을 지배하던 운명은 과학 앞에서 흔들렸다.

20세기에 들어 평균 수명은 40세에서 70세로 뛰어올랐다. DNA 발견, 단백질 합성, 인공수정 같은 과학 기술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인류는 신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을 늘린 첫 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전쟁보다 무서운 적은 여전히 남았다. 자살과 만성질환이다. WHO 집계에 따르면 최근에도 매년 약 70만 명 이상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으며, 당뇨병 관련 사망자는 연간 150만 명 내외다.3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건강하게 사는가가 더 중요한 전쟁이 된 것이다.

스타트업은 어떻게 도전하는가

실리콘밸리는 이미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생명·건강이 왜 스타트업의 무대가 되는지, 그리고 기존 거대 산업에 도전하는 패턴은 3장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나요〉에서 다룬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구글(Google)은 2013년 노화를 연구하는 자회사 칼리코(Calico)를 설립했고4, 피터 틸(Peter Thiel)은 암 치료제 스타트업 스템센트릭스(Stemcentrx)에 투자했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죽음은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 주장해왔다. 구글은 혈당을 측정하는 콘택트렌즈를, 애플(Apple)은 애플 워치(Apple Watch)로 사람들의 심박을 기록한다. 건강 데이터는 이제 경쟁의 무기다.

COVID-19 — 이 전쟁의 최전선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전쟁의 최전선이었다. 미국의 큐러티브(Curative)는 원래 패혈증 진단 툴을 개발하던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가 확산되자 곧바로 자가 채취 검사 키트와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만들었다. 한 주에 백만 건 가까운 검사를 처리했고, 2020년 한때 미국 코로나 검사 중 상당 비중이 이 회사에서 이뤄졌다.5 기존 시스템이 무너진 순간, 스타트업은 돌파구가 되었다.

가임과 선수 안전까지

출산율 위기에도 스타트업은 해법을 제시한다. 인도의 이니토(Inito)는 집에서 10분 만에 네 가지 호르몬을 측정해 임신 가능성을 진단하는 스마트 기기를 개발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정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신을 준비할 수 있다. 의료 접근성을 바꾼 덕에 출산율 문제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전직 프로 미식축구 선수가 창업한 플레이어스 헬스(Player's Health)는 선수들의 부상과 건강 정보를 기록하고 코치·의사·가족과 공유하게 했다. 팀 승리를 위해 부상을 숨기는 관행을 정면으로 깨뜨린 것이다. 이 회사는 현재 수만 개의 스포츠 조직과 협력하며 수백만 명의 선수 안전을 지키고, 보험·교육·부상 보고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스타트업이 한 산업의 문화를 바꾸는 방식이 바로 이런 것이다.

루닛 — 한국의 의료 AI

2016년 내가 구글 캠퍼스 서울(Google Campus Seoul)에서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회장과 함께 루닛(Lunit)을 만났던 일은 충격에 가까웠다. 루닛은 의료 영상을 AI로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이미 꽤 높은 정확도로 특정 암을 발견해내는 시연을 하면서 나는 잠시 미래를 보았다.

지금 루닛은 의사가 놓칠 수 있는 질병을 AI로 잡아낸다. 수천 장의 영상을 몇 초 만에 분석해 암의 징후를 찾아내고, 발병 수년 전부터 위험을 예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유럽의 병원에서는 루닛의 AI가 2차 판독자로 쓰여 암 발견율이 높아지고 불필요한 검사는 줄었다.6 루닛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의료의 미래는 더 많은 의사를 뽑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데이터와 기술로 보완하는 것이다.

미래의 전쟁터 — AI·바이오·헬스케어

딥마인드(DeepMind)의 알파폴드(AlphaFold)는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AI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려면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하지만, 과거에는 이 과정을 밝히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알파폴드는 이 시간을 며칠, 심지어 몇 시간으로 줄였다.7 덕분에 신약 후보 물질을 설계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이제 실험실에서 시행착오를 겪기 전에, 컴퓨터 속에서 어떤 약이 효과가 있을지 먼저 가늠할 수 있다. 신약 개발의 룰이 바뀐 것이다.

위고비 — 약 하나가 산업을 뒤흔들다

혁신 신약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고비(Wegovy)다. 원래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성분이었지만, 사람들의 체중을 줄이고 심장 질환 위험까지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8 기존의 '비만 치료제'는 일시적인 체중 감량에 그쳤지만, 위고비는 장기적으로 심혈관 건강까지 개선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사용이 급증했고, 비만이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라는 인식 전환을 이끌고 있다. 몸무게만 줄이는 약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약이 된 것이다.

차이 디스커버리 — 약 설계의 룰을 다시 쓰다

차이 디스커버리(Chai Discovery)는 '약을 만드는 속도'를 단순히 당긴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수준으로 바꿔버린 기업이다. 2024년 설립 후 시드 3,000만 달러로 출발한 팀은, 2025년 8월 Chai-2 플랫폼 공개와 함께 7,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약 5억 5,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 팀은 앞서 Chai-1이라는 AI 기반 플랫폼을 공개하며, 질병 표적 단백질 하나를 입력받아 52가지 '맞춰야 할 단백질'을 겨냥했고, 이 중 절반은 각각 20가지 디자인만으로 최소 하나씩 '맞춰지는' 성과를 냈다.9

한마디로, 과거엔 산더미처럼 쌓인 열쇠 중에서 맞는 열쇠를 찾는 식이었다. 비용과 시간이 수년이고 수백만 달러였다. 지금은 AI가 "이 자물쇠는 이렇게 생겼다"라고 알려주면 "가장 깔끔하게 맞는 열쇠를 바로 설계해준다" — 그게 바로 Chai-2다. 실제로 기존 방식으로 500만 달러 이상을 소모한 문제 하나를 AI는 단 이틀 만에 해결했고, 실험 검증까지 또 2주면 끝냈다.

이 시리즈 A 라운드에는 멘로 벤처스(Menlo Ventures)가 앤스로픽(Anthropic)의 앤솔로지 펀드(Anthology Fund)와 함께 리드 투자자로 참여했고, 전 화이자(Pfizer) 최고과학책임자였던 미카엘 돌스텐(Mikael Dolsten) 박사가 이사회에 합류해 "이 팀은 '생물학을 수학처럼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기업'"이라고 평했다.

다음 유니콘은 어디에서 태어날까

앞으로 스타트업의 기회는 명확하다. AI·바이오·헬스케어가 교차하는 영역이다. 인간의 건강 수명(healthspan)을 늘리는 문제에서 다음 세대의 유니콘이 태어날 것이다.

노트

생명·건강 스타트업의 네 가지 전장

  1. 예방의학 — 웨어러블과 연속 측정으로 질병이 생기기 전에 신호를 잡는다. (애플 워치, 아우라 링, 콘티뉴어스 글루코스 모니터)
  2. 진단 AI — 의사가 놓치는 패턴을 데이터로 보완한다. (루닛, 차이 디스커버리, 딥마인드 알파폴드)
  3. 신약 설계 — 설계 도구를 바꾸어 개발 비용·시간을 근본적으로 단축한다. (차이 디스커버리, 인실리코 메디신, 리커전 파머슈티컬즈)
  4. 접근성 혁신 — 병원 밖에서 정밀한 진단·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이니토, 큐러티브, 플레이어스 헬스)

공통점은 하나다 — 데이터와 AI가 의료의 한계 비용을 낮추는 방향이다.

이 판의 답은 지금 실험실과 스타트업 안에서 쓰이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손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고령화는 한국이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다. 이 흐름은 4장 〈사회 불평등과 초고령사회〉에서 이어진다.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어떻게 "지금까지 한 일"을 증명하는지는 6장 〈잘나가는 회사소개서〉에서, 기존 사업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피봇해 살아남은 사례는 5장 〈변화의 기술〉에서 다뤘다.)

참고 문헌

[1] "Black Death",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lack_Death

[2] "Smallpox",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mallpox

[3] "Suicide prevention", World Health Organization fact sheet. 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suicide

[4] "Calico (company)",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alico_(company)

[5] "Curative (company)",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urative_(company)

[6] "Luni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unit

[7] "AlphaFold",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lphaFold

[8] "Semaglutid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emaglutide

[9] "Introducing Chai-2: zero-shot antibody discovery in a 24-well plate", Chai Discovery. https://www.chaidiscovery.com/news/introducing-chai-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