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02 – 성평등

"다양성은 초대받는 것이고, 포용은 춤을 청하는 것이다."

— 버나 마이어스(Vernā Myers), 다양성 전문가

"Diversity is being invited to the party; inclusion is being asked to dance."

"여자 개발자는 밤샘 근무를 못한다"

한국 기업의 성별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어떤 스타트업 CEO가 "여자 개발자는 밤샘 근무를 못한다"고 말하는 걸 직접 들었다. 그 회사는 6개월 후 망했다. 인재를 성별로 구분하는 조직이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숫자가 말한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약 20% 수준이고, 국내 상장사 임원 중 여성 비율도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 OECD 주요 지표에서 '유리천장(glass ceiling)' 하위권을 오래 기록해왔다.1 숫자가 보여주듯, 아직도 여성에게 열린 자리는 많지 않다.

스타트업이 왜 다를 수 있나

하지만 스타트업은 다르다. 생존이 걸린 초기에는 성별을 따질 여유가 없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함께해야 한다. 성별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 오히려 스타트업이기에 더 과감하게 성평등을 실험할 수 있다. 대기업은 제도와 관습에 묶여 움직임이 느리지만, 스타트업은 조직 설계를 처음부터 새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조직 문화를 어떻게 설계하는지는 4장 〈기업문화〉에서 이어진다.)

한국의 여성 창업가들

구글(Google)의 여성 파운더스 펀드에서는 한국 여성 창업가들이 AI와 소비자 브랜드로 시장을 만들고 있다. 민금채 대표가 창업한 지구인컴퍼니는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UNLIMEAT)'로 대체육 시장을 개척했고, 엄수원 대표가 창업한 아드리엘(Adriel)은 연속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AI 광고 플랫폼을 성공시켰다. 이들은 모두 기술력과 시장 이해도로 승부했다.

해외 사례도 뚜렷하다. 캔바(Canva)의 공동창업자 멜라니 퍼킨스(Melanie Perkins)는 투자자 100명 이상에게 퇴짜를 맞고도 굴하지 않았다. 2013년 출시된 캔바는 현재 글로벌 디자인 플랫폼 유니콘으로, 2024년 기준 기업가치 약 320억 달러로 평가받았다.2

편견은 투자자의 질문에도 숨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투자자들은 여성 창업가에게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남성 창업가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질문이다. 다나 칸제(Dana Kanze) 등이 2010~2016년 TechCrunch Disrupt 피칭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사업을 소개해도 VC는 남성 창업가에게 "어떻게 키울 것인가(promotion-focused)"를 묻고 여성 창업가에게는 "어떻게 잃지 않을 것인가(prevention-focused)"를 물었다. 이 프레이밍 차이가 투자 금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3 같은 결과도 질문의 프레임이 다르면 평가가 다르게 나온다.

이런 차별을 의식적으로 없애는 것이 스타트업의 책무다.

초기부터 만드는 문화

스타트업은 달라야 한다. 낡은 기업 문화의 성차별을 일삼는 부장이 없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문화를 초기부터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더 적극적으로 여성의 사회 활동을 도와야 한다.

엔씨소프트(NCSOFT)는 오래전부터 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그냥 형식적인 게 아니라 시설과 교육 과정까지 국제 인증을 받은 수준이다. 아이와 함께 출근해서 어린이집에 맡기고, 근무하다가 가끔 아이가 야외 수업 받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내 친구는 "회사 어린이집이 아이를 키워준 거야"라고 말한다.

음식배달 스타트업 배달의민족은 남녀 직원 모두 육아휴직을 법정휴가보다 한 달 더 쓸 수 있다. 급여도 100% 지급한다. 생활비 걱정 없이 사랑하는 아이와 한 달 더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부모들에게 무척 큰 혜택이다.

돈이 없다고, 아직 작은 회사라고 미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못하는 일을 스타트업이 해야 한다.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육아휴직 보장 같은 제도는 작은 조직일수록 더 쉽게 도입할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바로 도입할 수 있는 성평등 실천 7가지

  1. 이력서 성별/사진 제외 — 블라인드 초기 스크리닝.
  2. 면접 질문 체크리스트 —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느냐"류 질문을 사전 차단.
  3. 임금 공개(pay transparency) — 같은 레벨은 같은 구간 — 협상력 차이로 인한 격차 제거.
  4. 육아휴직 남녀 동일 — 제도뿐 아니라 1호 사용자를 남성 임원으로 만들어 문화 신호를 보낸다.
  5. 회의 발언 모니터링 — 특정 성별이 말할 기회를 놓치는지 분기마다 체크.
  6. 승진 심사 패널 다양화 — 결정자 테이블에 여성 1명 이상 필수.
  7. 공동창업자 지분 비율 — 역할 기여도 기반, 성별 무관하게 정한다. (4장 〈공동창업자〉)

성평등은 경쟁력이다

성평등은 도덕의 문제일 뿐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다. 맥킨지(McKinsey)의 'Diversity Wins'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진의 성별 다양성이 상위 4분위인 기업은 하위 4분위인 기업 대비 수익성이 약 25% 높았다.4 창의적인 해법, 빠른 실행, 강한 팀워크가 필요할 때, 다양한 배경의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여성 창업가와 직원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초기부터 설계한 스타트업이 10년 뒤 어떤 조직으로 남아 있을지 — 답은 이미 일부 회사 안에서 관찰되고 있다.

참고 문헌

[1]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통계 / 한국 여성정책연구원 연도별 발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 안내. https://www.kwdi.re.kr/

[2] "Canva",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anva

[3] Dana Kanze, Laura Huang, Mark A. Conley, and E. Tory Higgins, "We Ask Men to Win and Women Not to Lose: Closing the Gender Gap in Startup Funding,"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61, no. 2 (2018): 586–614.

[4] Sundiatu Dixon-Fyle, Kevin Dolan, Vivian Hunt, and Sara Prince, "Diversity Wins: How Inclusion Matters", McKinsey & Company, May 19, 2020. https://www.mckinsey.com/featured-insights/diversity-and-inclusion/diversity-wins-how-inclusion-mat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