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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얼마나 투자받는가?

"가장 위험한 두 숫자는 '너무 적게 받은 금액'과 '너무 많이 받은 금액'이다."

— 프레드 윌슨(Fred Wilson), AVC blog1

"The two most dangerous numbers are 'too little' and 'too much.'"

자신의 스타트업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그리고 언제 투자받을지 전략을 세웠다면 다음 질문은 '얼마나 투자받을까'다. 투자 금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런웨이)와 내 지분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가(지분 희석)를 동시에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스타트업이 투자자로부터 얼마나 투자받느냐에 대한 결정은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정해진다.

  1. 다음 투자 라운드까지 필요한 자금은 얼마인가?
  2. 우리 회사의 기업가치는 얼마이고, 투자자의 지분율은 얼마로 할 것인가?

5억은 생존자금, 50억은 성장자금, 500억은 전쟁자금이다

첫 번째 기준은 단순하다. 다음 단계까지 살아남는 데 필요한 현금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문앞으로 배달해주는 스타트업을 이제 막 창업했다고 하자. 서울 강남구 일부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 테스트한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초기 고객이 우리 제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측정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개발비와 마케팅비 등 비용이 약 4억 원 조금 넘게 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투자 요청 금액은 개발비 4억 원에 여유비를 조금 더한 5억 원 정도가 적절하다.

5억 원 규모라면 엔젤 투자자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에 접근해 유치할 수 있다. 보통 이 단계에서는 한 곳의 VC만으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는데, 드물게 전략적으로 두세 곳에서 동시에 받는 경우도 있다.

노트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비용을 근거로 투자 유치 금액을 산출해보자

  •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 —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
  • MVP — 웹사이트,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페이스북 페이지, 인스타그램 채널을 오픈하고 이를 주문으로 연결하는 마케팅 캠페인 (모바일 앱은 제외)
  • 서비스 대상 고객 — 서울시 강남구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20~30대 가정
  •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주요 지표 — 구매전환율, 재구매율, 객단가
  • 예상 기간 — MVP 출시 후 6개월 이내
  • 예상 비용 — 개발비 3억 원(개발 인력 포함) + 마케팅비 1억 원

→ 투자 요청 금액: 5억 원

월간 비용(Burn rate)의 예측

회계사의 도움을 받아 아무리 훌륭한 예상 재무제표를 만든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예측치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1년도 지나지 않아 애초 예상이 턱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투자자들도 초기에는 재무제표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일부 초기 투자자들은 아예 보지도 않는다.) 다만 향후 비용을 예상할 수 있는 요소들(인건비와 구성원 수 등)을 물어보고 확인할 뿐이다.

사업 초기 창업가는 두 가지 재무적 지표만 예측해도 충분하다.

1. 예상 매출 — 본격적인 J커브를 그리기 전까지는 0원으로 예상하면 된다. 첫 달에 기대보다 높은 매출이 나왔다고 해서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희망적인 예상 재무제표를 주는 실수를 하지 마라.

2. 월간 비용(Burn rate) — 인건비·고정임대료·마케팅비·외주개발비 등 필수 비용을 합한 현금 지출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재무제표에 감가상각비(시간이 지나면서 공장이나 설비 같은 고정자산이 노후되는 걸 반영하기 위해 자산의 원래 가격에서 일정 금액을 빼는 것)와 무형자산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실제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은 당장 현금 흐름에 영향을 주는 항목이 아니기 때문에 재무제표를 볼 때 오히려 착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재무제표에는 개발비가 무형자산으로 잡히고 컴퓨터·서버 장비는 유형자산으로 기록된다. 특히 유형자산은 몇 년에 걸쳐 감가상각비로 계산되는데, 이는 스타트업 실제와 다르다. 둘 다 현금이 지불되었다면 전액 비용으로 계산하는 것이 현금 흐름 관점에서 맞다. 당분간 현금과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유형자산 외에는 잊어라.

이렇게 월간 비용이 산정되고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기간이 나오면, '월간 비용 × 기간'이 곧 투자 유치 금액이 된다.

노트

예시 — 월간 비용 기반 6개월 런웨이 산출

항목계산금액
월평균 인건비600만원 × 8명 × 6개월2억 8,800만 원
사무실 임대료·식대·복리후생비1,200만원 × 6개월7,200만 원
마케팅비1억 원
합계약 4억 6,000만 원
투자 유치 금액여유비 포함5억 원

주의 — "5~7억 사이 어딘가"라고 말하지 마라

이렇게 산정한 월간 비용(Burn rate)은 어디까지나 예측치이기 때문에 창업가는 "5억~7억 정도 투자를 유치하겠다"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이는 창업가에겐 큰 차이가 아닐지 몰라도 어떤 투자자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될 수 있다.

  • 최대 5억까지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 — 총액 5억이면 혼자 라운드를 완결할 수 있지만, 7억이면 추가로 2억의 투자금을 찾아야 한다. 투자 실패 가능성이 생긴다.
  • 3억을 투자할 의향이 있는 투자자 — 5억 라운드에서는 리드 투자자(lead investor)로서 협상을 주도할 수 있지만, 7억 라운드에서는 마이너 투자자가 되어 협상을 따라가야 한다. 의사결정 포지션이 완전히 바뀐다.

창업가는 투자 금액을 정할 때 분명한 숫자로 말해야 한다. "5억에서 7억 사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투자 라운드는 혼돈에 빠진다. 만약 나중에 또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서 1억을 더 투자하겠다고 한다면 그때 가서 다시 조율하면 된다.

성장 단계별 — 5억 · 50억 · 500억

이후 이 스타트업은 MVP 단계를 성공적으로 넘어 서비스 지역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제대로 된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익일배송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서울 지역 2곳에 자체 물류센터를 짓기로 했다. 매출은 발생하지만 공격적인 개발비·마케팅비 집행으로 아직 적자인 상태다. 이 계획 실행에 약 50억 원이 필요하다면 이 금액이 다음 라운드의 투자 유치 목표가 된다.

20–50억 원 규모라면 시리즈 A에서 시리즈 B 단계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들에게 피칭할 수 있다. 한 곳의 VC가 전액 투자할 수도 있지만, 2–3곳의 VC가 공동 투자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이때는 리드 투자자를 정해서 투자 조건 협상을 주도하게 하는 것이 좋다. (좋은 리드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은 6장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

3년이 지나 이 스타트업이 전국적으로 사업을 성장시켜 취급 신선식품과 상품 종류가 2,000가지가 넘고, 기존 오프라인 대기업들과 경쟁할 만큼 성장했다고 하자. 이제는 본격적인 경쟁과 시장 확장이 필요하다. 그 비용이 약 500억 원이라면, 후기 VC뿐 아니라 사모펀드(PE)도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회계 실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변호사·회계사의 전문적 도움이 필요하다. 회사 내에 IR(Investor Relations)팀을 두기도 한다.

단계핵심 지표투자 유치 금액
시드MVP의 재구매율, 충성 고객 전환율, LTV5억 원
시리즈 A서울·경기 확장 후에도 재구매율·LTV 유지 / 물류센터 가동 품질50억 원
시리즈 BSKU 수, 고객 서비스 품질, 매출과 영업이익500억 원

투자 금액과 기업가치 — 둘이 함께 움직인다

"스푼 라디오(Spoon Radio), 500 글로벌 등으로부터 10억 원 투자유치"와 같은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사실 기사 제목만으로는 이 투자 유치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2 창업가와 투자자에게 더 중요한 정보는 단순히 투자 금액보다는 기업가치·창업가의 지분율·투자 조건이지만, 이런 정보는 대부분 비공개다.

스푼 라디오는 왜 10억 원을 투자받았을까? 10억 원이 스푼 라디오에게는 작은 금액일까, 큰 금액일까? 10억 원 투자를 받는 대가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기업가치에 달려 있다.

투자 전·후 기업가치(Pre-/Post-money valuation)

투자 전 기업가치(Pre-money valuation)는 말 그대로 금번 라운드 투자를 받기 전 기업가치다. 즉, 다음 관계식이 성립한다.

투자 전 기업가치 + 금번 투자금액 = 투자 후 기업가치

다른 방식으로는, 이번 라운드에서 발행할 주식의 가격과 기존 발행 주식수를 곱한 값이 투자 전 기업가치다. 완전희석 기준(Fully diluted basis)으로 계산할 때는 스톡옵션과 전환사채까지 모두 포함한 주식 수로 계산해야 한다. (여기서는 단순화를 위해 희석 요소 고려는 생략한다.)

예를 들어 스푼 라디오의 투자 전 기업가치가 90억 원이고 투자금액이 10억 원이라면, 투자 후 기업가치는 100억 원이 된다.

투자 전 기업가치투자 금액투자 후 기업가치
예시90억 원+ 10억 원= 100억 원

투자 전 창업가의 지분율이 100%였다면, 이 투자 후 창업가의 지분율은 90%로 내려가고(이를 지분 희석되었다고 한다), 투자자의 지분율은 10%가 된다.

투자 전투자 후
창업가100%90%
투자자0%10%

투자자가 투자 금액을 15억 원으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

투자 전투자 금액투자 후
기업가치90억 원(A)+ 15억 원(B)= 105억 원(A+B)
창업가100%85.7%
투자자0%14.3%

투자 금액을 5억 원 늘림으로써 투자자는 약 4.3%의 추가 지분을 얻는다. 같은 양만큼 창업가의 지분이 줄어든다.

지분 희석을 연쇄 라운드 관점에서 계산하라

창업가가 지분 희석을 계산할 때 고려할 사항은 이번 라운드의 투자만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 번 투자받은 이후에 창업가의 지분이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인가'다.

앞서의 신선식품 스타트업이 시드 5억, 시리즈 A 50억, 시리즈 B 500억 원을 순차 투자받았다고 가정하고, 아래 기업가치로 라운드가 진행되었고 그 외 희석 요인이 없었다고 단순화하면 창업가의 최종 지분율은 약 41% 수준으로 떨어진다.

단계투자 후 기업가치투자 금액창업가 지분율
시드20억 원5억 원75%
시리즈 A150억 원50억 원50%
시리즈 B3,000억 원500억 원41.65%

그렇다면 얼마를 유지해야 하나

보통 초기에는 공동 창업자들의 지분 합이 2/3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좋지만,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훨씬 낮으면서도 훌륭히 성장시키는 경우가 여럿 있다.

산업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다. 초기 비용이 덜 들고 성장이 빠른 인터넷 서비스·상거래 분야는 창업가의 지분율이 높은 편이고, 반도체·바이오처럼 초기 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는 상장 직전 창업가 지분율이 불과 몇 %인 회사도 있다. 어쨌거나 투자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창업가 지분율은 희석된다는 점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초기에 높은 밸류에이션이 꼭 좋을까 — 다운라운드의 함정

반대로, 초기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아 창업가의 지분율을 최대한 높게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 초기에 너무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받은 경우, 회사가 기대만큼 성장 곡선을 그리지 않으면 후속 투자 유치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해주는 투자자가 많지 않거나, 급기야는 다운 라운드(down round) — 이전 라운드보다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초기 창업가가 주요 경영진에서 사임하거나 회사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초기부터 밸류에이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도록 사려 깊게 산정해야 한다.

창업가의 체크리스트 — 얼마를 받을지 정하기 전에

  • 나의 지분을 얼마까지 희석할 수 있는가? (내가 유지해야 할 최소 지분은?)
  • 향후 추가 투자 유치 이후 내 지분은 어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가?
  • 이번 투자 유치 금액과 밸류에이션은 시장 수준과 비교해 적절한가?
  • 원하는 투자 금액을 유치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벤처캐피탈은 어디인가?

투자자의 체크리스트

  • 회사가 요구하는 밸류에이션과 투자 유치 금액이 적절한가?
  • 내가 이 라운드의 리드 투자자인가, 아니면 리드를 따라가는 투자자인가?
  • 향후 추가 투자 유치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가?
  • 다음 단계까지 가는 데 필요한 자금은 얼마이고, 이번 투자 유치 금액으로 달성 가능한가?
  • 회사가 투자금을 어디에 쓰는가?

다음은 — VC 이전의 자금

얼마를 받을지 정했더라도, 외부 투자자의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창업가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친구·신용카드의 역할을 먼저 짚는다. (6장 〈가족·친구·비자 라운드 — VC 이전의 자금〉)

참고 문헌

[1] Fred Wilson, "The Dangers Of Raising Too Much Money", AVC (A VC blog). https://avc.com/

[2] "스푼 라디오(Spoon Radio)",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스푼_라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