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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실사와 협상 —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일

"가장 좋은 협상은 양쪽 모두가 이 거래가 공정하다고 믿는 협상이다."

— 브래드 펠드(Brad Feld) & 제이슨 멘델슨(Jason Mendelson), 《벤처 딜스(Venture Deals)》

실사 요청 리스트를 처음 받는 날

내가 2010년에 두 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처음 시리즈 A 실사(Due Diligence) 요청 리스트를 받은 날을 기억한다. 투자자가 보낸 이메일에는 수십 항목의 서류 목록이 첨부되어 있었다. 최근 3년 재무제표, 정관, 주주총회·이사회 의사록, 주주명부, 핵심 직원 이력, 진행 중인 소송 — 텀시트에 사인한 지 2주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당시 나는 이 서류 중 절반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경험은 이후 구글 캠퍼스 서울(Google Campus Seoul) 시절과 500 글로벌(500 Global) 파트너 시절 동안 수많은 창업가에게서 반복해서 본 장면이기도 하다. 첫 실사 리스트를 받는 날, 대부분의 창업가는 당황한다. 지금까지는 피칭과 설득의 세계였지만, 실사부터는 증명의 세계다. 말한 것이 사실인지 서류와 데이터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 장은 피칭 이후 본계약 서명까지, 창업가가 마주하는 실사·협상 과정의 지도다. 준비를 미리 해두면 하얘지는 얼굴은 하나도 없다.

VC의 조직구조 — 누가 결정하는가

투자자와 한두 번 미팅하고 나면 본격적인 투자 협상이 시작된다. 이때 창업가가 반드시 파악해야 할 것은 누가 실제 의사결정을 내리는가다.

  • 심사역(Associate / Principal) — 명함에 '수석심사역', '책임심사역', '과장/부장'으로 적히는 경우도 있다. 주된 업무는 스타트업 발굴(deal sourcing), 투자 조건 협상, 실사 실무, 투자 후 경영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최종 의사결정권은 없지만 파트너에게 직접 보고하기 때문에 영향력은 크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이유다.
  • 파트너(General Partner) — 펀드의 법적 책임을 지고 최종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 회사에 따라 상무·부사장·대표 등 직함을 쓰기도 한다. 여러 명의 파트너가 있는 경우, 각자 독립적 결정을 내리는 회사도 있고 다수결·만장일치를 요구하는 회사도 있다.
  • 백오피스(Back Office) — 펀드 운용에 필요한 사무 업무. 투자 후 주주 명부·재무제표 요청이 이쪽에서 온다.
  • EIR(Entrepreneur in Residence, 상주기업가) — 엑시트한 창업가가 차기 창업을 준비하며 VC에 머무는 형태. 투자 의사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투자 심의위원회(투심위)는 파트너들이 모여 최종 결정을 내리는 회의다. 매주 또는 격주로 열리는 경우가 많고, 심사역이 담당 딜을 파트너들 앞에서 발표한다. 이 회의가 언제 열리는지, 다음 투심위에 올라가려면 어떤 자료가 더 필요한지를 심사역에게 꾸준히 묻는 것이 좋다.

본격적인 투자 협상이 시작되면 거의 매일, 최소한 며칠에 한 번은 담당 심사역과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딱히 어젠다가 없을 때 유용한 질문 몇 가지:

  • "혹시 추가로 필요한 자료나 궁금하신 것이 있나요?"
  •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 "투자심의위원회는 언제로 잡혔나요? 결정은 언제 알 수 있나요?"

국내 VC와 해외 VC — 서로 다른 장단점

국내 스타트업이 받을 수 있는 투자처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한국 벤처캐피탈 협회에 등록된 국내 VC는 120곳이 넘지만, 실제로 활발하게 초기 투자를 하는 곳은 스무 곳 남짓이다.1

  • 국내 VC — 투자 후 보고·관리가 상대적으로 까다롭지만 국내 시장 이해도와 네트워크가 강점이다. 한국어로 이사회가 진행되고, 국내 규제·세무 환경에 밝다.
  • 해외 VC — 투자 조건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편이고 장기 관점이 강하다. 해외 네트워크 접근이 필요한 사업에 유리하다. 대표적으로 알토스벤처스(Altos Ventures)가 쿠팡(Coupang)·배달의민족·블루홀 등에 투자해왔고, 배달의민족은 초기 알토스 투자 이후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힐하우스(Hillhouse) 같은 해외 투자자도 유치했다. 알토스의 네트워크가 이 후속 라운드에 크게 기여했다.

어느 쪽이 옳다는 답은 없다. 해외 확장 계획이 있는 SaaS나 B2B 스타트업이라면 해외 VC 한 곳을 라운드에 꼭 포함시키는 전략이 자주 통하고, 국내 시장에 집중하는 D2C·물류·핀테크 스타트업이라면 국내 VC의 규제 네트워크가 더 값지다.

실사 3종 — 법률·재무·기술

텀시트에 서명하고 나면 보통 2개월 이내에 본계약 서명을 목표로 실사가 진행된다. 상황에 따라 6개월까지 늘어지기도 한다. 세 종류다.

  • 법률 실사(Legal DD) — 회사가 적법하게 설립되어 있는지, 주주총회·이사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는지, 사업에 필요한 면허·자격이 있는지, 특허·소송 이슈가 없는지를 검토한다.
  • 재무 실사(Financial DD) — 재무제표가 제대로 기록되어 있는지, 우발채무나 세무 리스크가 없는지를 본다. 횡령·탈세·가공 매출·재고 누락·특수관계인 거래는 투자 취소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다. 대표이사 가수금·미수금·채무·자본금 같은 항목은 흠이 없도록 미리 정리해두어야 한다.
  • 기술 실사(Technical DD) — 핵심 기술이 설명대로 구현되어 있는지, 엔지니어 팀이 개발을 완료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다른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지를 엔지니어 인터뷰·코드 리뷰·특허 조사 등으로 확인한다.2

실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어도 대부분은 해결 가능하다. 심사역과 파트너는 창업가의 사업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괴롭히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가 나오면 솔직하게 공유하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 편이 가장 빠르다.

노트

실사 요청 자료 — 미리 준비해두면 좋은 리스트

법률 실사용

  • 법인 등기부등본, 정관, 주주총회·이사회 의사록 (최근 3년)
  • 주주명부 + 캡테이블(Capitalization Table, 스톡옵션·전환사채 포함)
  • 과거 투자 계약서 (SAFE·Convertible Note·우선주 발행 기록 포함)
  • 특허·상표·저작권 등록 증명
  •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소송·분쟁 기록

재무 실사용

  • 최근 3년간 재무제표 (초기 스타트업은 실제 매출·비용 기록 표도 가능)
  • 매월 현금흐름(cash flow) 기록, 은행 잔고 증명
  • 핵심 계약서 (임대차·주요 고객·주요 공급처)
  • 세무조사 기록, 세무 컨설팅 자문 기록
  • 직원 급여·4대보험·퇴직금 충당금

기술 실사용

  • 제품 아키텍처·기술 문서
  • 코드 저장소 접근권 (읽기 전용)
  • 엔지니어 이력 및 면담 가능 일정
  • 서드파티 라이센스·오픈소스 사용 현황
  • 주요 성능 지표 (리텐션·전환율·LTV 등)

복수의 투자자와 협상하라

시장은 경쟁이 있을 때 발전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여러 투자자가 우리 회사에 투자하기를 원하면 성공적으로 유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처음 투자 유치에 나서는 창업가가 자주 하는 실수는, 한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투자 의사를 표시한 데 만족해 다른 투자자를 후순위로 미루는 것이다. 처음 적극적이었던 투자자가 결국 투자 의사를 철회하고, 창업가가 다른 투자자로부터 기회를 잃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종 계약서에 날인하고 자금이 입금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투자자 A에게 노골적으로 "우리는 투자자 B와 매우 긍정적으로 협상 중입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든 다른 투자자와 진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상은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좋다. 투자자는 창업가가 언제든 다른 투자자에게 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있을 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주의할 것은 비밀 유지다. 한 투자자와 협상한 내용을 다른 투자자에게 전달하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 투자 업계는 좁고, 신사적이지 않은 행동은 오래 남는다.

리드 투자자 정하기

여러 투자자가 공동 투자를 고려한다면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 리드 투자자 방식 —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쪽이 리드(lead investor)가 되어 창업가와 구체적 조건을 협상한다. 공동 투자자들은 리드가 합의한 내용에 동의하고 계약서에 서명한다. 리드가 아닌 소액 투자자라도 다른 투자자와의 관계가 좋고 공동 투자를 끌어올 수 있다면 리드 역할을 할 수 있다.
  • 창업가 주도 방식 — 창업가가 먼저 구체적 투자 조건(텀시트)을 제시하고 이에 동의하는 투자자의 서명을 받아온다. 이미 투자 유치 경험이 많고 여러 투자자가 줄을 설 때만 현실적이다.

대부분은 믿을 만한 투자자를 리드로 선정해 그들과 협상하는 편이 낫다. 공동 투자자가 리드가 합의한 내용에 동의하지 않고 새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때는 창업가가 '교통 정리'를 해야 한다. 조건이 서로 충돌한다면 누구의 조건을 우선할지 명확히 하고, 모든 투자자가 같은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정리해야 한다.

솔직하고 투명하게

투자자로부터 거세고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받으면 무리하게 낙관적인 답변을 하거나 위기를 모면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매출 전망을 부풀린다든지, 중요한 개발자의 채용이 곧 될 것처럼 말한다든지, 큰 계약 건이 임박한 것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도.

그럴 땐 오히려 회사나 시장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투자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솔루션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창업가가 시장의 난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지,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점만 잘 설명해도 충분한 설득이 된다. 반대로, 누구나 아는 골칫거리를 창업가만 못 보고 있다면 그건 큰 감점 요소다.

시장 전망이나 매출 예측은 합리적인 선에서 조금 보수적으로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 초과 달성하는 편이 낫지, 목표를 높게 잡고 50%도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라운드에서 난감해진다.

다음은 — 계약서의 언어

실사가 끝나면 본계약이다. 텀시트보다 훨씬 길고, 법률 용어가 빽빽하다. 다음 두 장에서는 계약서의 핵심 조항을 풀어본다. (☞ 6장 〈유니콘의 투자계약서〉, 〈투자계약서 조항 해부〉)

참고 문헌

[1]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 공식 웹사이트. http://www.kvca.or.kr/

[2] "Due diligenc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Due_dili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