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투자유치 전 반드시 던져야 할 10가지 질문
"돈을 보여줘!"
— 영화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1996)
"Show me the money!"
— Rod Tidwell, from Jerry Maguire (1996)
2019년, 위워크(WeWork)의 창업자 아담 뉴만(Adam Neumann)은 상장을 준비하며 기업가치 470억 달러를 요구했다. 그가 자문받지 않은 질문은 딱 하나였다. "우리는 지금 왜 투자받는가?" 답은 '성장'이 아니라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였고, 시장이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가치는 80억 달러로 무너졌다.1 5년 뒤인 2024년 위워크는 챕터 11 파산 보호를 거쳐 구조조정됐다.
투자유치는 회사의 엔진에 연료를 넣는 일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기름을 채우면, 연료를 태우면서 방향을 잃는다. 창업가가 투자유치에 나서기 전, 반드시 스스로 답해야 하는 열 가지 질문이 있다. 내가 실리콘밸리 500 글로벌(500 Global)과 구글 캠퍼스 서울(Google Campus Seoul)을 거치며 수백 명의 창업가를 만나면서 정리한 체크리스트다.
열 가지 질문
세 단계로 묶어서 본다. 투자를 꺼내기 전에 답해야 할 네 가지(왜·언제·얼마·소개서), 협상 테이블 위에서 다뤄야 할 세 가지(피칭·좋은 투자자·협상), 그리고 서명 이후의 세 가지(계약서 두 축·투자 이후).
① 투자를 꺼내기 전 — 왜·언제·얼마·소개서
첫째, 왜 투자받는가? 왜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왜 반드시 그 벤처캐피탈리스트여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많은 창업가들이 단순히 연구개발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또는 회사에 돈이 떨어져가니까 생존하기 위해서 벤처캐피탈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는 이유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라야 한다. 다음 단계 목표는 무엇이며,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그 목표까지 가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는가? 또는 그 목표보다 훨씬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투자가 완벽한 J커브(J-curve, 초기 손실을 지나 급성장하는 궤적)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이 투자를 요청하는 목적이라야 한다. 그리고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왜 다른 스타트업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6장 〈왜 투자받는가〉)
둘째, 언제 투자받는가? 왜 지금 투자받아야 하는가? 투자를 받는 시점은 다양하다. 처음 창업했을 때, 어느 정도 프로토타입 제품이 나왔을 때,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작하기 직전, 어느 정도 사업이 성장했을 때, 공격적으로 경쟁자들을 압박하며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야 할 때, 상장하기 직전 등 사업의 성장 과정에서 투자 유치가 필요한 때가 여럿 있다. 이런 시점을 어떻게 알고, 각 시점이 투자유치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6장 〈언제 투자받는가〉)
셋째, 얼마나 투자받아야 하나? 아마 창업가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얼마나 투자받을 수 있는지 — 좀 더 정확하게는 얼마나 투자받아야 하는지일 것이다. 이 질문은 결국 우리 회사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가 얼마고, 기존 주주들이 얼마나 희석을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변환된다. 숫자로 확인해보자. 투자 전 기업가치(Pre-money valuation)가 90억 원이고 이번 라운드에 10억 원을 투자받는다고 하자. 투자 후 기업가치(Post-money)는 100억 원이 되고, 새 투자자는 회사 지분 10%를 가져간다. 창업가 본인의 지분이 라운드 전 60%였다면 라운드 후에는 54%로 줄어든다. 즉 '10%포인트 감소'가 아니라 '기존 지분율의 10분의 1이 희석'된다.
| 주주 | 라운드 전 | 라운드 후 |
|---|---|---|
| 창업가 | 60% | 54% |
| 기존 투자자 | 40% | 36% |
| 새 투자자 | — | 10% |
(6장 〈얼마나 투자받는가〉)
넷째, (훌륭한) 사업계획서는 어떻게 쓰는가? 보통 투자자를 만나기 전 사업계획서나 회사소개서를 이메일로 전달해 검토 요청을 받는다. 이미 아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이 문서가 우리 회사와 팀을 알리는 가장 첫 단계이기 때문에 꼼꼼하고 인상 깊게 써야 한다. 다만 일러둘 것은, 회사 소개서나 사업계획서를 잘 못 썼다고 해서 — 혹은 피칭을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 투자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본질은 사업 그 자체다. 그렇다고 사업계획서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부실한 사업계획서는 현실에서 '운영 규율'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읽혀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투자 유치의 성공은 좋은 사업계획서 하나로 완성되지 않고, 열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잘 맞아떨어질 때 완성된다. (6장 〈잘나가는 회사소개서〉)
② 협상 테이블 위 — 피칭·좋은 투자자·대화
다섯째, (훌륭한) 피칭은 어떻게 하는가? 투자자가 사업계획서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면 창업가에게 미팅을 요청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네트워킹 파티나 우연한 자리에서 짧은 소개만으로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보통 이런 것을 엘리베이터 피칭(elevator pitch)이라고 부른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의미다.) 투자자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투자가 성사되는지 — 이 역시 연습과 설계가 필요한 기술이다.
여섯째, 좋은 투자자는 어떻게 알아보는가? 이제는 창업가가 투자자를 평가할 차례다. 투자자는 크게 세 층위로 나뉜다 — (1) 급성장을 뒤에서 밀어주는 가치 부가형(이사회 참여, 후속 투자(follow-on), 네트워크 연결), (2) 자본만 제공하는 자본 중심형(신호 효과는 있지만 운영 지원은 제한적), 그리고 드물게 (3) 적신호형(경쟁사와의 딜플로우 공유, 다음 라운드 방해). 현실의 대부분 투자자는 1과 2 사이에 있고, 3은 극소수다. 창업가가 할 일은 적신호형을 걸러내는 동시에, 자본 중심형과 가치 부가형을 구분하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6장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
일곱째, 투자자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본격 협상에 들어갔을 때 이미 선수인 그들과 달리, 투자 유치를 처음 하는 창업가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언어가 낯설고, 일정과 페이스를 놓치기 쉽다. 하지만 협상의 주도권은 창업가가 쥐어야 한다 — 투자자의 속도에 맞춰 끌려가기 시작하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어느 순간 거절 통지를 받게 된다.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려면 매일매일 어떤 대화를 해야 할까?
③ 서명 이후 — 계약서와 투자 이후
여덟째·아홉째, 투자 계약서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투자자가 내민 계약서에는 온갖 복잡한 조항들이 있다. 크게 경제적인 조항(valuation, liquidation preference, anti-dilution)과 경영 참여에 관한 조항(board seat, protective provisions, drag-along)으로 나눌 수 있다. 업계 표준 교재인 브래드 펠드(Brad Feld)와 제이슨 멘델슨(Jason Mendelson)의 《벤처 딜(Venture Deals)》도 이 두 축으로 계약 조항을 분류한다.3 변호사의 도움은 필수이지만, 창업가 스스로도 이 문구들의 의미를 이해하면 협상을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6장 〈유니콘의 투자계약서〉, 5장 〈변호사와 회계사〉)
열째, 투자받은 후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많은 창업가가 이 질문을 간과한다.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나면 힘들었던 과정이 끝난 줄 알고 축하 파티를 열며 끝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는 날은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다. 투자자가 생겼다는 것은 곧 회사에 중요한 구성원이 생겼다는 뜻이며, 앞으로 이들과 함께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해나가야 한다. 이는 마치 결혼과 같다. 힘든 연애 과정을 거쳐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이젠 동반자와 함께 새로운 살림을 시작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투자자는 언젠가 투자금을 회수(엑시트(exit))해야 하기에 — 이혼을 전제로 한 결혼 생활의 시작으로 이해하면 좀 더 쉽다. (6장 〈시간은 가장 강력한 무기〉)
시작하기 전에
10개의 질문에 하나씩 답을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 정도 투자유치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경험도 쌓아야 한다. 혼자서 끙끙대기보다 가급적 많은 투자자를 만나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수십 번 주고받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생긴다.
위워크의 아담 뉴만은 '얼마나'만 물었다. 에어비앤비(Airbnb)의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는 2008년 대선 시즌에 '오바마 오(Obama O's)'·'캡틴 맥케인(Cap'n McCain's)' 시리얼 상자를 만들어 팔면서 약 3만 달러를 모았다. 그 현금 흐름과 끈기 덕분에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 2009년 겨울 기수에 입성할 수 있었다.2 얼마나 모으느냐보다 왜 지금 그 돈이 필요한지를 먼저 답한 결과였다.
"돈을 보여줘"라고 외치기 전에, 우리는 왜 그 돈을 원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다음 장에서 첫 번째 질문부터 풀어보자. (6장 〈왜 투자받는가〉)
용어 정리
이 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
- 기업가치(valuation) — 투자자가 판단하는 회사의 가치. 같은 10억 원 투자도 기업가치가 90억 원이냐 190억 원이냐에 따라 받는 지분율이 다르다.
- Pre-money / Post-money — 투자 직전과 직후의 기업가치. Post-money = Pre-money + 투자액.
- 지분 희석(dilution) — 새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주면 기존 주주 지분율이 줄어드는 현상. 지분'금액'은 늘 수 있지만 지분'율'은 준다.
- 투자 라운드(round) — 투자 단계. 시드(seed) → 시리즈 A → B → C …로 이어진다. 각 라운드는 회사의 성장 단계를 대략 표현한다.
- J커브(J-curve) — 초기엔 손실이 깊어지지만 이후 가파르게 회복·성장하는 궤적. VC 펀드의 수익률 곡선으로도 쓰이는 용어이지만, 이 책에서는 개별 기업의 성장 궤적을 가리킨다.
- 엑시트(exit) —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건. 상장(IPO) 또는 M&A 매각이 대표적이며, 드물게 secondary sale이나 acquihire 형태도 있다.
참고 문헌
[1] "WeWor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WeWork
[2] "Airbnb",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irbnb
[3] Brad Feld, Jason Mendelson. Venture Deals: Be Smarter Than Your Lawyer and Venture Capitalist (4th ed.). Wiley, 2019. https://www.goodreads.com/book/show/10800409-venture-de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