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10 –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

"기업가치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 폴 그레이엄(Paul Graham),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 창업자1

"The most important thing about valuation is that it's not that important."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단지 회사 은행계좌에 거금이 들어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좋은 투자자는 우리 회사의 직원과도 같아서, 사업 개발·영업·인사 조직 등 많은 영역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좋은 사업 파트너나 고객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단지 좋은 조건에 돈을 많이 주는 투자자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회사의 가치를 얼마나 알아주는지,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회사가 어려울 때는 어떤 태도로 도와줄 투자자인지를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많은 창업가들이 내게 묻는다. "좋은 투자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보나요?" 세 가지를 본다.

첫째, 과거 투자 경력을 본다

투자회사의 전체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고 우리 회사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본다. 우리 회사의 투자 심사를 담당할 파트너의 개인 투자 포트폴리오도 살펴본다. 그 사람이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 분야에 어떤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내게 필요한 사업 파트너들과의 네트워크가 있는지, 또는 내가 부족한 분야를 채워줄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어떤 창업가는 경쟁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를 꺼리는데, 나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의 전략이나 중요한 정보를 경쟁 회사에 흘릴까 걱정하는 것인데, 만약 그런 의심이 든다면 처음부터 그 투자자와 이야기하면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투자 계약은 결혼과 비슷하다. (6장 〈투자유치 전 반드시 던져야 할 10가지 질문〉 § 10번) 배우자가 외도할지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결혼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일단 신뢰할 수 있는 투자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투자자도 그렇게 쉽게 경쟁사의 정보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지 않는다. 투자라는 직업 자체가 상당한 수준의 비밀 유지를 요구한다. 입이 가벼운 투자자라면 처음부터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포트폴리오 창업가들에게 물어본다

염두에 둔 벤처캐피탈이나 투자 파트너로부터 이미 투자받은 다른 창업가들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이미 알고 있는 지인이라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알 만한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도 좋다. 그것도 힘들다면 솔직하게 투자자에게 "다른 포트폴리오 회사 대표의 연락처를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선뜻 소개해준다. (거부하는 투자자라면 그 자체가 신호다.)

투자자가 창업가와 이사회에 믿고 맡기는 편인지, 세세하게 간섭하는 편인지, 어떤 분야에 조언을 잘해주는지, 네트워크는 어떤지를 물어보면 된다. 특히 투자자와 스타트업 대표·이사회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상황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다. 서로 의견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결했는지, 회사가 어려울 때 등 돌리고 바로 투자 회수부터 하려는 투자자인지, 아니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는 투자자인지 판단해야 한다. 투자자의 레퍼런스 체크를 미리 해두면 앞으로 회사 경영을 함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펀드의 성격을 본다 — 출자자(LP)와 만기일

우리 회사에 투자하려는 펀드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벤처펀드(보통 "○○투자조합"이라는 이름)의 출자자(LP, Limited Partner)가 누구인지 꼭 물어보라. 펀드 출자자로는 국내외 대기업이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국민연금·중소기업청 모태펀드·산업은행 같은 공공 자금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는 개인이 출자자인 펀드도 있다.

어떤 경우든 투자 펀드의 뒤에 있는 출자자가 누구인지 미리 알아야 한다. LG인지 삼성인지, 네이버(Naver)인지 텐센트(Tencent)인지, 개인이라면 어떤 사람인지. 왜냐면 우리 회사의 주요 정보가 이들 출자자에게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리 비밀 유지를 요청하지 않는 한, 투자자들은 보통 출자자에게 최근 투자 내역과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을 함께 보고한다.

만약 내 회사의 기술이 특정 대기업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 대기업이 출자자인 펀드에서 투자를 받지 않거나, 미리 비밀 유지를 요청해야 한다. (기밀 유지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대기업들이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스타트업들의 정보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펀드 만기일을 반드시 확인하라

펀드 내용 중 체크해야 할 또 하나는 만기일이다. 보통 벤처펀드는 7~10년이다.2 만약 펀드의 만기일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투자받는 것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 왜냐면 투자 파트너는 만기일이 되면 펀드를 해산하고 출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가 그때까지 엑시트(exit)하지 않는다면 회사의 지분이 세컨더리 펀드(secondary fund)나 벤처투자회사의 본계정, 출자자 또는 제3자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투자받은 지 1~2년도 안 되었는데 회수를 독촉하거나 무리한 성장을 원하는 투자자와 상대하게 되면 무척 피곤해진다. 가급적 만기일이 충분히 남은 펀드에서 투자받아야 오랜 기간 동안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시간의 무기화 — 6장 〈시간은 가장 강력한 무기〉)

좋은 투자자 체크리스트

  • 이 투자 파트너의 개인 포트폴리오는 어떤 회사들인가? (회사 전체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 이 파트너는 내 사업 분야의 지식·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가?
  • 이 펀드의 출자자(LP) 목록은 누구인가? 그중 내가 불편한 회사가 있는가?
  • 이 펀드의 만기일은 언제인가? 최소 5년 이상 남아 있는가?
  • 이 파트너는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포트폴리오 창업가로부터 레퍼런스 체크했는가?
  • 이 파트너는 회사가 어려울 때 돕는 쪽인가, 회수하는 쪽인가?
  • 이 투자자는 보드 행태(board behavior)가 간섭형인가 위임형인가?

돈의 크기보다 돈의 성격

최종적으로 기억할 것. 투자 금액이 크다고 좋은 투자가 아니다. 같은 10억 원이라도 누가 주느냐에 따라 회사의 3년 뒤가 달라진다. (투자 금액의 의미는 6장 〈얼마나 투자받는가〉) 다음 장에서는 투자 계약서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조항들을 살펴본다. (6장 〈유니콘의 투자계약서〉)

참고 문헌

[1] Paul Graham, "Valuation", paulgraham.com essays. http://www.paulgraham.com/valuation.html

[2] "Venture capital fund",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Venture_capital_f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