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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잘나가는 회사소개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걸 쓰지 못한다면, 글로 쓸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

— 벤저민 프랭클린

"Either write something worth reading or do something worth writing."

— Benjamin Franklin, 1738

회사소개서는 투자자나 주요 사업 파트너에게 우리 회사를 알리는 문서다. 딱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시장 규모, 문제점, 해결 방법, 제품, 팀 등 꼭 넣어야 하는 항목을 잘 담으면 좋은 회사소개서가 된다. 여기서는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수천 개의 회사소개서를 보고 느꼈던 점, 특히 창업가들이 흔히 하는 실수나 자주 간과하는 것들을 몇 가지 지적하고 싶다.

시장 규모와 시장 분석 — 통찰 없이 수치만 베끼지 마라

보통 시장 규모를 이야기할 때 쉽게 구할 수 있는 시장 연구 기관이나 기사에 나온 수치를 아무 생각 없이 인용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투자자들이나 이 업을 오래 해온 사람들은 이미 이런 수치들을 익히 알고 있다. 아무런 인사이트나 고민 없이 베껴 넣은 숫자는 오히려 창업자의 무지를 드러내 공격당하기 쉽다. 대신 자신이 보는 시장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기회가 있는지 창업가만의 통찰력을 담아야 한다.

넷플릭스(Netflix)를 창업한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당시 비디오 대여업을 분석하면서 소매점 없이 우편 배달만으로 운영하고 연체료도 없는 시장을 발견했다.1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만 인용했다면 이런 시장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장조사기관의 예측은 왜 틀리는가

1980년대 맥킨지 컨설팅(McKinsey & Company)은 AT&T의 의뢰로 수행한 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2000년까지 미국 휴대폰 가입자가 약 90만 명 수준에 그칠 것이라 예측하며 모바일 시장에 진출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실제로 2000년 미국 모바일 가입자 수는 약 1억 900만 명 수준으로 성장했다. 맥킨지의 예상은 약 120배 차이로 틀렸다.2

2007년 아이폰(iPhone)이 시장에 나온 지 2년 후인 2009년, 세계적 리서치 기업 가트너(Gartner Inc.)는 2014년에도 여전히 심비안 OS(Symbian OS)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안드로이드(Android)는 불과 14.5%의 시장점유율만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2012년 심비안은 시장에서 철수했고, 안드로이드는 2014년 10억 대 이상 출시되면서 시장 1위의 모바일 OS가 되었다.3

시장조사기관의 연구는 과거와 현재를 토대로 나오기 때문에, 기술로 급격히 변화하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는 부적절하다. 오히려 창업가의 경험과 특출한 통찰이 만들어낸 예상이 훨씬 잘 맞을 때가 많고, 이를 잘 설명해야 한다. 창업가와 벤처 투자자는 바로 이런 특이점(singularity)을 찾는 사람들이다.

SWOT 분석, 4P 분석처럼 경영학 원론에 나오는 것들은 사업계획서에 넣지 않는 편이 좋다.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 갓 창업한 사람이 5분 대충 생각해서 적은 SWOT은 시장에서 금방 들킨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나

시장을 발견했다면 그다음은 우리 기술·제품·솔루션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설명해야 한다.

온라인 푸드마켓 마켓컬리(Market Kurly)는 좋은 품질의 신선식품을 이른 아침에 문 앞까지 배송해준다고 약속했다. 음식을 신선하게 고객에게 배달하는 문제는 항상 시장의 큰 숙제였다. 마켓컬리는 고객이 밤늦게 주문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문 앞에 배송되도록 했는데, 이는 고객에게 큰 가치다. 마켓컬리는 이 두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배송 비용을 비롯한 여러 문제도 한꺼번에 개선했다.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만 배달하니 길이 안 막혀 배송 효율이 올라가고, 아무도 보지 않으니 배송 트럭을 예쁘게 꾸며야 하는 수고와 비용도 절감할 수 있었다.4

시장이나 고객의 고통이 큰 만큼 회사의 가치도 크다.

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최고의 팀인가

사실 우리 회사의 기술이나 제품이 뛰어나다는 것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시장에서 검증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 검증 단계 전에 투자 파트너들을 설득해 투자 유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창업자들이 이 일을 가장 잘 해낼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하고자 하는 사업 분야에 따라 제약·유통·마케팅·전자공학 분야의 박사학위가 있다거나 특정 분야의 오랜 경험이 있다면 효과적인 설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 팀이 어떻게 시장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고, 수많은 좌절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을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공동창업자들이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팀이어야 한다.

특히 초기 투자자들은 사업계획서에 적힌 제품이나 특정 기술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창업가로서 당신과 공동창업자들이 만들어낼 미래의 혁신에 투자하는 것이다. (공동창업자의 중요성은 4장 〈공동창업자〉)

회사소개서 더 빛나게 만들기 — 실전 체크리스트

회사 연혁·로고·표지

  • 회사 연혁: 모두 문서 가장 뒤 첨부자료로 작성하라. 우리나라 회사들의 사업계획서 99%는 첫 페이지에 회사 연혁부터 나오는데, 과연 이게 가장 먼저 나와야 하는 정보인지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굳이 백년 삼대 장인정신으로 시작하는 사업이 아니라면 연혁은 볼 필요도 없다. (사장님 말씀, 사훈, 조직도도 마찬가지 — 과감히 생략하라.)
  • 회사 로고: 페이지마다 로고와 상표를 넣어야 하는가? 과도한 로고와 브랜드 사용은 사업계획서를 광고판처럼 만들어버린다. 앞표지나 뒷표지에 한 번 넣는 것으로 충분하다.
  • 표지: 날짜, 회사 이름, 담당자 전화번호·이메일만 포함되면 된다. 전문 디자이너의 도움이 없다면 흰색이나 검은색으로 두는 편이 오히려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경고

피해야 할 의미 없는 단어들

  • 월드 베스트(World Best) — 구체적인 증거 없이는 쓰지 말자
  •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 — 월드 베스트와 동일
  • 세계 최초·세계 1등 — "대한민국 1등 자전거"보다는 "2011년 판매 1위 자전거 브랜드"가 구체적
  • 시너지(Synergy) — 너무 추상적.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 방법을 설명하라
  • 원천기술 보유 — 특허·경쟁사 비교·기술 시장 동향을 근거로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 마지막 슬라이드에 허무하게 쓴 "Thank you" 메시지도 빼자
노트

맞춤법 검사와 영문 회사소개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사업계획서라면 최소한 맞춤법 검사는 꼭 하자. 모국어도 제대로 못 쓰면 신뢰도가 10만 점 정도 깎인다. 영어로 쓸 때도 마찬가지다. 콩글리시로 도배한 사업계획서는 오히려 안 쓰는 것이 낫다. 영어로 쓸 거면 단순 번역이 아니라 여러 나라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여러 버전을 준비하라

하나의 사업계획서로 모든 상황을 커버하려 하지 마라. 투자자의 관심은 상황에 따라 다르고, 같은 문서라도 읽는 맥락이 다르면 효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최소 세 가지 버전을 준비해두는 편이 좋다.

세 가지 버전 + 첨부 전략

  • 요약 버전(Executive Summary, 1~2페이지) — 투자자에게 처음 보내는 이메일에 첨부하는 버전. 시장·문제·해결·팀·투자 요청 금액까지 한 장에 압축한다. 투자자가 포트폴리오 파트너에게 공유할 때도 이 버전이 돌아다닌다.
  • 풀 버전(10~15페이지) — 첫 미팅을 앞두고 공유하는 버전. 시장 분석·경쟁사·재무 예측·이사회 구성·지금까지 한 일(traction)의 상세.
  • 첨부(Appendix) — 회사 연혁·팀 바이오·기술 스펙·계약서·특허 목록 등 세부 자료. 풀 버전 뒤에 묶거나, 요청 시에만 별도로 전달한다.
  • 다양한 포맷 — PDF 한 가지만이 아니라 링크드인 프로필용 요약, 이메일 본문용 1-문단 피치, 구글 슬라이드 공유 링크 등 채널에 맞춘 포맷. 투자자가 스마트폰으로 열어도 읽히는지 반드시 확인.

드롭박스(Dropbox)가 2007년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에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한두 페이지였다. 단 한 장으로 시작해 관심을 끌고, 관심이 생긴 상대에게만 디테일을 보여주는 구조다. "한 페이지로 못 말한다면 열 페이지로도 못 말한다"는 격언은 이 맥락에서 나왔다.5

회사소개서와 사업계획서는 다른가?

회사소개서와 사업계획서는 목적이 다른 문서다. 회사소개서는 주로 영업이나 일반적인 목적으로 우리 회사의 제품이나 현황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사업계획서는 제품·기술 설명보다는 전체 시장 상황, 진출하고자 하는 시장, 문제점, 해결 방법, 개발 계획, 영업 계획, 자금 조달 계획 등 전략적 의사결정과 계획을 담는다. 사업계획서의 독자는 회사 내부와 주요 투자자다. 이 책에서는 이 둘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두 문서 모두 투자자에게 전달한다는 가정하에 설명한다.

다음은 — 사업계획서를 잘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

회사소개서의 형식이 준비됐다면, 내용으로 넘어갈 차례다. 투자자의 책상에 끝까지 남는 문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6장 〈성공하는 사업계획서의 세 가지 공통점〉)

참고 문헌

  1. Wikipedia contributors. "Netflix." Wikipedia. 리드 헤이스팅스·마크 랜돌프(Marc Randolph)의 1997년 우편 DVD 대여 창업, 연체료 없는 비즈니스 모델 설계.
  2. Wikipedia contributors. "McKinsey & Company." Wikipedia. 1980년대 AT&T 의뢰로 수행한 미국 휴대폰 시장 분석 — 2000년까지 90만 명 가입자 예측. 실제는 약 1억 900만 명으로 120배 차이.
  3. Wikipedia contributors. "Symbian." Wikipedia. 노키아·에릭슨·모토로라가 공동 소유했던 심비안 OS. 2009년 가트너의 2014년 시장점유율 1위 예측은 완전히 빗나감.
  4. Wikipedia contributors. "마켓컬리." Wikipedia. 컬리(Kurly)의 새벽배송 모델 — 콜드체인 기반 주문 후 다음 날 아침 문 앞 배송. 2015년 시작.
  5. Wikipedia contributors. "Dropbox." Wikipedia. 드루 휴스턴의 2007년 Y Combinator 지원서는 한두 페이지로 구성됨. 단일 가치 제안에 집중한 초기 사업계획서의 표준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