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12 – 유니콘의 투자계약서

"계약에서 호구를 찾아라. 호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바로 당신이 호구다."

— 마크 큐반(Mark Cuban), 연쇄 창업가

"Always look for the fool in the deal. If you don't find one, it's you."

투자자와 어느 정도 투자 논의가 진행되면 텀시트(term sheet)라는 것을 준다. 텀시트에는 회사의 기업가치와 투자 금액처럼 나중에 실제 작성할 투자 계약서의 주요 항목들이 나와 있다. 또한 투자 계약서를 체결하기까지 진행해야 할 기술·회계·법률 실사의 방법과 배타적 협상권 등 협상 진행을 위한 조건도 담겨 있다. 창업가는 이를 보고 지금까지 투자자와 이야기한 투자 조건들이 제대로 포함되었는지 확인하면 된다.1

인터넷을 찾아보면 텀시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블로그나 사이트들이 많으니 그것을 보고 공부하면 된다. 여기서는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Pre-money / Post-money — 말의 순서가 계산을 바꾼다

투자자 A가 창업가 X에게 "이번 Series A 라운드 밸류에이션(valuation)은 100억으로 하시고, 저희가 20억 투자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창업가들은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으로 투자받기를 원한다. 그동안 개발하고 영업해온 결과와 미래에 기대되는 영업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또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창업가 자신들의 지분 희석(dilution)이 덜하다. 그래서 창업가가 되물었다.

"프리머니(Pre-money) 100억을 말씀하시는 거죠? 만약 당신이 20억을 투자한다면 당신네 회사의 지분율은 20/120이니까 약 16.7%가 되겠네요?"

투자자는 가급적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하고 싶어 한다. 만약 기업가치 100억일 때 투자한 회사가 몇 년 뒤 400억에 M&A된다면 자신의 투자금을 4배로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가치 200억으로 투자한다면 같은 M&A에서 2배 회수로 만족해야 한다. 이는 펀드의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투자자는 대부분 포스트머니(Post-money) 밸류에이션으로 이야기한다.

"아니요, 100억은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입니다. 우리가 20억 투자하니까 우리 지분은 20%가 되겠네요"라고 투자자 A가 말한다.

프리머니 밸류에이션 + 투자 유치 금액 =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

포스트머니로 이야기할 때 좋은 점 하나는 중간에 추가 투자자가 들어오거나 투자 유치 금액이 달라질 경우 계산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항상 분모는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으로 정해져 있으므로(위 경우 100억 원), 만약 추가로 투자자 B가 5억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하면 창업가는 이미 100억 원 포스트머니에 동의했으므로 프리머니를 80억 원에서 75억 원으로 낮추고, 투자자 A와 B로부터 총 25억 원을 투자받는 계약을 해야 한다. 투자 후 투자자 A의 지분율은 20%로 유지되고, 투자자 B는 5%가 된다.

(만약 100억 원 프리머니로 이야기했다면 추가 투자자 B가 5억 원을 투자할 경우 투자자 A의 지분율은 20/125이 되어 16%로 떨어진다.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을 싫어한다. 그래서 포스트머니 기준을 선호한다.)

배타적 협상권(No-shop / Exclusivity)

투자자들은 대개 독점적으로 투자 검토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텀시트에 넣고 싶어 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기하고만 투자 협상을 하고, 다른 투자자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항이다. 창업가 입장에서는 몇 달 동안 한 투자자와만 협상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협상하다 깨지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다. 또한 한 번 협상이 결렬되면 다른 투자자와 협상할 때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왜 지난번 진행하던 투자 협상이 깨졌죠?"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투자자가 배타적 협상권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기한과 해지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2개월만 해당 투자자와 협상하며, 만약 기한 내에 투자 계약서 서명(또는 미리 지정한 마일스톤)을 달성하지 못하면 다른 투자자와도 협상할 수 있도록 배타적 협상권을 해지한다"는 식이다. 기한 내라 하더라도 특정 조건(예를 들어 제품 출시 실패, 비밀 유지 협약 위반 등)이 되면 배타적 협상권이 해지되도록 해놓아야 다른 투자자와 협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신주인수계약 + 주주간계약

텀시트에 사인하고 나면 본격적인 투자 계약 협상에 들어간다. 투자 계약은 대부분 '신주인수계약'과 '주주간계약'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초기 기업의 경우에는 하나의 계약으로 하는 경우도 꽤 있다.)

  • 신주인수계약 — 회사가 발행하고 투자자가 인수하는 주식의 종류와 가격, 배당과 의결권 등 주식의 권리를 명시한다.
  • 주주간계약(Shareholders' Agreement) — 투자자와 주요 주주 간에 지켜야 할 우선매수권(Right of First Refusal, ROFR), 공동매도권(Tag-along right), 우선매도권(Drag-along right), 잔여재산분배청구권(Liquidation preference), 경영상 동의권과 협의권, 정보 요청권, 이사 선임권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희석 방지 조항(Anti-dilution provisions)

투자자는 지분율에 민감하다. 작은 스타트업일 때는 지분율 1%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스타트업이 큰 유니콘이 되어 수조 원대 가치로 상장한다면 1%는 엄청난 차이다. 일례로 스냅 주식회사(Snap Inc.)는 2017년 3월 상장 당시 기업가치 약 240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이 규모에서 1%는 수천억 원대에 해당한다.2

투자자 A가 포스트머니 100억 원으로 스타트업 M에 20억 원을 투자하면 지분율은 20%가 된다. 현실에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스타트업 M이 미래에 발행할 스톡옵션(stock option)을 전체 주식 중 10% 정도로 계획해 실제로 발행한다면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 투자자 A의 지분율이 더 줄어든다. (이를 희석된다(diluted)고 한다.) 또한 스타트업이 새로운 투자를 받거나 전환사채(convertible note)를 발행한다면 나중에 보통주로 전환되는 주식이 생기게 되므로, 늘어난 주식 수 때문에 지분율은 더 희석된다.

따라서 이런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투자자는 자신의 주식이 희석될 가능성에 대해 투자 계약서에 자세히 쓰고 제한한다. 이처럼 발행되었거나 발행 계획이 있는 스톡옵션·전환사채 등 추가로 주식 수를 변동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모두 포함한 지분 증권표를 완전 희석 기준 지분 증권표(Fully diluted cap table)라 한다.

경영상 동의권과 협의권 — 실무 협상의 본진

투자 계약서에는 '경영상 동의권'과 '경영상 협의권'이라는 조항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항목들이다.

  • 연간 사업계획 및 예산의 수립·변경
  • 청산, 합병, 분할,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사업 일부의 양수도, 분할합병, 대상회사 발행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 정관 또는 이사회 규정의 변경
  • 투자자의 지분율이 변경되는 주식 또는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 취득 권리가 포함된 일체의 증권 또는 증서의 발행,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부여 및 자기주식의 취득
  • 이사회 정원의 변경
  • 현금 배당 또는 현물·주식 배당의 선언·지급
  • 1억 원을 초과하는 자산의 취득·처분·담보 제공·이전·임대차를 포함한 기타 처분 행위
  • 1억 원을 초과하는 투자·자본적 지출
  • 자금 차입·보증·담보 제공·자금의 대여
  • 특수 관계인과의 거래
  • 상법상 주주총회에 상정할 안건의 결정

보통 투자 협상을 할 때는 기업가치와 투자 금액에 대한 협상보다 이런 디테일한 조항에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경영상 동의권을 잘 모르는 창업가는 투자자가 내민 경영상 동의권·협의권을 무심히 보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협의할 여지가 많고 창업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조항도 많다. 동의권에 들어가는 조항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고, 그렇지 않다면 동의권에 있는 조항들을 협의권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이사의 수, 주주총회 안건의 상정, 주요 채무, 주요 자산의 매각 등 많은 조항들을 동의권에서 협의권으로 옮기면 창업가·경영진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좀 더 넓어진다.

(투자자와 이사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경영하라는 말은 아니다. 언제나 이사회에서 부여받은 범위 안에서 대표이사와 이사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임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

경고

동의권 vs 협의권 — 이 차이를 알고 협상하라

  • 동의권(Veto right) — 투자자가 반대하면 해당 사안을 실행할 수 없다. 사실상 투자자에게 거부권을 부여하는 강력한 권한.
  • 협의권(Consultation right) — 투자자에게 미리 상의·통보해야 하지만, 투자자가 반대해도 창업가가 실행할 수 있다. 훨씬 가벼운 권한.

많은 조항이 동의권에 들어가면 창업가의 의사결정 속도가 크게 느려진다. 사소한 채용·계약·지출도 투자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협의권으로 옮기는 협상은 실무 운영의 자유를 지키는 핵심이다.

변호사를 피하지 마라

투자 계약서는 어렵다. 처음 창업하는 창업가라면 아마 텀시트니, 전환상환우선주 투자 계약서니 하는 문서들을 처음 볼 것이다. 투자자는 일주일에도 여러 번 이런 텀시트와 각종 계약서를 검토하며 일하기에 무척 익숙하지만(마치 개발자가 파이썬(Python)으로 작성된 화면을 매일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창업가에게는 생소하기 마련이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잘 아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스타트업 전문 로펌들은 초기 창업가에게 1~2시간 무료 상담이나 시드 단계 비용 이연(deferred billing)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5장 〈변호사와 회계사〉)

다음은 — 작은 돈, 다른 경로

대형 VC 투자가 전부는 아니다.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과 정부 지원금 같은 대체 자금 경로도 있다. (6장 〈크라우드펀딩〉, 〈정부지원금〉)

참고 문헌

[1] "Term shee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erm_sheet

[2] "Snap Inc.",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nap_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