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왜 투자받는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돈이 가져다주는 것이 필요하다."
— 벤 호로위츠(Ben Horowitz), 《하드씽(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중에서
"It's not the money you need — it's what the money brings."
스타트업은 지수함수 성장(exponential growth)을 만들기 위해 고도로 효율화된 조직이다.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이 검증되었다면 벤처캐피탈의 자금 투입이 스타트업의 성장을 J커브로 가속시킬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자본은 부모·형제에게 빌려서 조달하기에는 규모도 크고, 위험도도 높다. (이들은 대부분 스타트업 경영에 대한 전문성도 없다.)
지수함수 성장(Exponential Growth)이란?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거의 대부분 지수함수 성장을 기대하는 조직들이다. 선형 성장(linear growth)에 대비되는 말로, 자원을 투입한 만큼만 성장하는 일반적인 기업들과 달리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로 자원 투입량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변호사나 미용사는 대표적인 선형 성장 모델이다. 이들은 시간을 투입하는 만큼 매출이 발생한다.
지수 성장의 대표 기업으로는 에어비앤비(Airbnb)와 우버(Uber)를 들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호텔방 하나 소유하지 않고서도 세계 최대 호텔 체인보다 훨씬 많은 숙박 건수를 처리한다.1 우버도 차량 한 대 소유하지 않고도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고객에게 이동 수단을 제공한다. 공통점은 혁신적인 기술·비즈니스 모델, 빠른 제품·시장 적합성 발견, 급격한 고객 수 증가, 그리고 세계적인 벤처캐피탈의 지원이다.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이란?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이 강력한 시장 수요와 맞아떨어지는지에 대한 척도를 말한다. 투자자인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2007년 블로그 글에서 처음 썼던 말로, "제품이 유의미한 시장에서 그 시장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2
제품·시장 적합성을 확인하려면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 — 시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능을 갖춘 최소한의 제품)을 출시해보거나, A/B 테스트, 고객 행동 데이터 분석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투자 유치의 세 가지 장점 — 현금, 사람, 검증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자신의 성장을 빠르게 만들기 위해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원한다. 구체적으로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주는 장점은 무엇일까?
첫째, 현금이 생긴다
스타트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인재,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술, 성장하는 시장과 그에 맞는 제품, 그리고 이를 실행할 현금이 필요하다. 이 중 현금은 벤처캐피탈이 가장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요소다. 창업가는 회사의 주식을 파는 대가로 벤처캐피탈의 현금을 받는다. 이 현금은 인재 영입, 기술 개발, 드문 경우엔 다른 회사 인수에 쓴다. 이렇게 현금을 투입해서 회사의 성장을 더 크게 — 또는 더 빨리 — 만들 수 있다.
벤처캐피탈이 주는 현금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한 돈이지, '생존'을 위한 돈이 아니다. 단지 운영자금이 필요하다면 투자 유치에 나서지 마라.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자금을 대는 것은 스타트업이 10배 이상 성장해서 세상에 임팩트를 던지길 바라서지, 겨우 생존하는 정도를 원해서가 아니다. 만약 창업가가 단지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유치한다면, 다음 라운드에도 기업가치를 성장시키지 못한 채 불리한 조건으로 또 다른 투자자의 돈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창업가의 지분이 희석될 뿐이다. 그런 라운드가 서너 번 진행되면 결국 그 회사는 목표를 잃은 좀비 기업이 될 뿐이다.
번레이트(Burn rate)란?
매월 지출되는 비용을 말한다. 직원 급여와 부대 비용, 사무실 임대료, 최소한의 광고·영업비 등을 포함한 지출이다. 투자자들은 초기 스타트업의 번레이트에 매우 신경을 쓴다. 직원 급여를 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투자받은 현금을 '성장'을 만드는 데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를 신경 쓰라는 의미다.
아직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지 못한 스타트업이라면 투자자는 비용을 아껴 '생존 가능성'을 높이라고 주문할 것이다. 반대로 성장 변곡점을 통과했다면 적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성장을 더 가속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라고 주문할 것이다.
둘째, 사람을 얻는다
투자자는 훌륭한 사업 파트너다. 초기 스타트업에는 늘 인력이 모자라다. 기술과 제품 개발에 필요한 개발·디자인 같은 핵심 인력을 제외하면 능력 있는 사람을 영입할 여유가 있는 스타트업은 몇 안 된다. 영업, 사업 개발과 제휴, 재무 등의 일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파트타임 컨설턴트처럼 투자자에게 일을 맡기면 된다.
특히 처음 투자받을 때 '좋은 투자자'로부터 투자받는 것이 중요하다.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는 구글(Google)에 투자한 후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했던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를 대신해 회사를 운영할 CEO로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를 2001년에 추천했다.3
좋은 투자자를 만나면 그들이 투자한 다른 성공적인 창업가들과 연결될 수 있고,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이자 투자자인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는 그들만의 강력한 창업가 네트워크로 유명하다. 이 네트워크 안의 선·후배 창업가들이 서로를 돕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4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500 글로벌(500 Global, 옛 500 Startups) 역시 전 세계 각 분야의 수천 명 창업가 네트워크로 촘촘히 엮여 있고, 이들끼리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는 초기 창업가가 실패를 덜 하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이 경우에는 투자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단지 돈이 필요해서, 그 돈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투자를 받아 고생하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여럿 보았다. 초기 투자자가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회사 경영에 간섭하거나, 잘못된 조언을 주거나, 후속 투자 유치를 방해하는 식으로 회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첫 투자자를 잘 유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6장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
셋째, 객관적 검증을 받는다
투자 유치를 통해서 시장에서 객관적인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 외에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어떤 리스크가 존재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 제품 개발이나 초기 영업에 몇 달씩 매달리다 보면 창업 초기 질문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잊어버리기 쉽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왜 창업했나', '우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반드시 벤처캐피탈 투자여야 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운이 좋아서 외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오기 전에 큰 매출을 일으켜 자기 자본으로 재투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자금을 통해 대출을 일으키거나 연구 과제·정부 지원금을 통해서도 초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6장 〈정부지원금〉) 최근에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수십억 원 이상 자금을 조달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6장 〈크라우드펀딩〉)
그럼에도 회사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투자받지 않고도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회사의 목표는 성공적인 투자 유치가 아니다. 외부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는 건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거나, 더 빨리·더 크게 성공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정리 — 투자를 받는 세 가지 목적
- 현금 — 성장을 위한 자금 확보
- 사람 — 훌륭한 사업 파트너 확보
- 검증 — 기업가치와 사업 가설의 객관적 검증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분명한 답이 있다면 투자 유치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다. 다음 질문은 '언제'다. (6장 〈언제 투자받는가〉)
참고 문헌
[1] "Airbnb",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irbnb
[2] Marc Andreessen, "The Only Thing That Matters", pmarca blog (archive), June 25, 2007. https://pmarchive.com/guide_to_startups_part4.html
[3] "Eric Schmid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Eric_Schmidt
[4] "Y Combinator",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Y_Combin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