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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시간은 가장 강력한 무기

"언젠가 찾아올 운을 기다릴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 노정석, 연쇄 창업가

"You must have an unshakable conviction that allows you to wait for the luck that will eventually come."

협상의 카드는 기업가치가 아니라 시간이다

투자 유치를 진행할 때 창업가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기업가치를 얼마로 평가받을 것인가와 얼마를 투자받을 것인가다. 둘 다 결국 지분율로 표현된다(투자 금액을 기업가치로 나누면 지분율이므로). 협상 과정 중에 기업가치와 투자 유치 금액을 조정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낸다.

많은 창업가들이 자신의 지분율을 최대한 방어하기 위해, 또 자신들이 만든 제품과 기술에 대해 더 높이 평가받고 싶어서 높은 기업가치를 고집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대만큼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나는 창업가가 협상할 수 있는 카드는 기업가치나 투자 금액이 아니라 협상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투자자가 협상 기간의 주도권을 쥔다. 투자자는 당장 급할 것이 없으므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또 오래 기다릴수록 창업가는 돈이 떨어져가니 투자자가 협상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칼끝을 거꾸로 돌리는 법

창업가를 향한 이 칼끝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창업가가 협상 기간을 정하는 것이다. 미리 "5월 말까지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협상을 종료한다"는 식으로 투자자와 기한을 못 박아 두는 것이다.

특히 벤처캐피탈이 소유한 펀드의 만료 시기나 최근 투자 실적이 저조하다는 등의 약점을 파악해두면 이런 전략은 더욱 유효하다. 곧 투자 기간의 만기가 돌아오거나 투자를 많이 하지 못한 펀드는 투자자에게 더 빨리 투자해야 한다는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펀드 만기일의 중요성은 6장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

무작정 협상을 이어가기보다는 이렇게 협상 기간을 정해두고, 끝나면 다른 투자자와 협상하는 편이 낫다. 이 원칙을 체화한 대표적 사례가 텀시트 경쟁이다. 여러 VC로부터 동시에 텀시트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협상 기간이 짧아지고 조건이 개선된다.1

협상 기간을 창업가 쪽으로 되돌리는 5가지 방법

  1. 최소 3개 VC와 병렬 협상. "이번 주 금요일까지 회신 부탁드립니다" — 선의의 경쟁 구도를 만든다.
  2. 펀드 만기·운용 현황 조사. 만기 임박 펀드는 빠른 의사결정 압박이 있다. (6장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
  3. 구체적 마일스톤 기한 제시. "다음 달 신제품 출시 전에 자금 확보 필요" — 객관적 데드라인.
  4. 배타적 협상권 기한 고정. 2개월 이상 허용하지 말 것. (6장 〈유니콘의 투자계약서〉)
  5. 런웨이 18개월 이상 확보 후 협상 개시. 당장 돈이 급한 창업가의 협상력은 0에 수렴한다. (6장 〈언제 투자받는가〉)

사례 — 에어비앤비의 "No"를 12번 듣고도 잃지 않은 것

2008~2009년 에어비앤비(Airbnb)의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는 7개의 시드 VC로부터 거절을 받았다. 그 사이 현금은 떨어져 가고 있었지만, 그는 당장 아무 조건이나 받아들이는 대신 시간을 투자해 오바마 오(Obama O's)·캡틴 맥케인(Cap'n McCain's) 시리얼을 팔아 3만 달러를 모았다.2 그 시간이 만든 결과는 두 가지였다 — 런웨이가 연장됐고, "우리는 얼마든지 버틴다"는 메시지가 투자자에게 전달됐다. 결국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 2009년 겨울 기수에 입성한 뒤의 시리즈 A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성사됐다.

반대 사례도 있다. 2019년 위워크(WeWork)의 아담 뉴만(Adam Neumann)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에 집중했다. 상장 일정을 조기에 확정하고 S-1을 공개한 뒤 시장 반응이 나빠지자 협상 기간을 되돌릴 여유가 없었다. 470억 달러로 평가받길 원했던 밸류에이션은 80억으로 주저앉았고, 투자자들은 철회했다.3 시간을 스스로 쥐지 못한 창업가의 결말이다.

시간이라는 자산이 지분보다 중요하다

지분 1%를 더 지키는 것보다 올바른 속도로 올바른 투자자와 계약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잘못된 투자자의 좋은 조건보다 좋은 투자자의 보통 조건이 길게 보면 회사에 유리하다. 시간은 이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다. 이 책에서 끝으로 전하고 싶은 것 하나. 서두르지 마라. 하지만 기다리기만 하지도 마라. 스스로 기한을 정하고, 그 기한 안에서 최선의 조건을 만들어라.

참고 문헌

[1] Brad Feld and Jason Mendelson, Venture Deals: Be Smarter Than Your Lawyer and Venture Capitalist, 4th ed. Wiley, 2019. https://www.goodreads.com/book/show/10800409-venture-deals

[2] "Airbnb",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irbnb

[3] "WeWor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We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