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후입선출(Last-In, First-Out)
"퀄리티란 사람들이 그 물건의 가격을 잊은 지 한참 지나서 기억되는 것이다."
— 구찌(Gucci) 가문
"Quality is remembered long after the price is forgotten."
용어 주의: 이 글의 '후입선출(LIFO)'은 회계 용어 LIFO와 반대 방향의 수사적 차용이다. 회계에서 LIFO는 재고 평가 방식이지만, 여기서는 '가장 최근에 들어온 재료를 먼저 손님에게 낸다'는 고객 경험 설계 원칙을 뜻한다.
망하는 식당은 어제 들어온 채소부터 쓴다. 오늘 들어온 신선한 재료를 썩히기 싫어서다. 하지만 그런 음식은 맛이 없다. 손님은 돌아서고, 식당 주인은 광고비부터 걱정한다. 진짜 문제는 냉장고 안 시든 채소다.
잘되는 식당 주인들은 다르다. 오늘 아침 들어온 신선한 채소를 먼저 쓴다. 어제 것이 남아 있어도 과감히 버린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은 맛있기 마련이고, 손님들은 알아서 입소문을 낸다. 매일 재료가 동나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동대문의 두 옷가게
식재료만 그런 게 아니다. 동대문 옷가게들도 똑같다. 어떤 매장은 갓 들어온 최신 트렌드만 진열한다. 시즌이 끝난 옷은 아까워도 즉시 치운다.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먼저 찾고, 손님이 줄을 선다. 바로 옆 가게는 이월상품에 '70% 세일' 딱지를 붙이느라 바쁘다. 마진도 안 남고, 진짜 고객은 외면한다.
회계에서 배우는 '선입선출(First-In, First-Out)'은 창고의 효율을 높인다. 하지만 고객 경험의 세계에서는 반대다. 가장 최근에 들어온 것이 가장 먼저 고객에게 가야 한다. 후입선출(Last-In, First-Out)이다.
쿠팡·카카오톡·토스가 공유하는 원칙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쿠팡(Coupang)의 '로켓배송'도 결국은 이 신선함의 철학이 만든 성과다. 고객이 원할 때, 가장 빠르게, 가장 깔끔하게 도착하는 경험. 그게 고객이 기억하는 유일한 가치다.1 초기 카카오톡(KakaoTalk)도 매일 업데이트를 반복했다. 사용자 피드백을 들으면 그날 밤 고치고, 다음 날 반영했다.
토스(Toss)도 처음엔 간편송금 하나에만 집중했다. 매주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즉시 업데이트했다. "이번 주에 나온 불만은 다음 주에 해결한다"가 원칙이었다. 6개월짜리 로드맵 따위는 없었다. 고객이 오늘 원하는 것을 내일 만들었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토스는 누적 가입자 2,80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1위 종합 핀테크로 자리 잡았다.2
완벽함이 아니라 신선함
많은 창업가들이 착각한다. "우리 제품은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라며 출시를 미룬다. 아니다. 신선함은 완벽함이 아니다. 오늘 아침 갓 수확한 상추가 며칠 된 유기농 상추보다 맛있듯이, 지금 당장 고객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당신의 제품 로드맵을 다시 보라. 6개월 전에 기획한 기능을 아직도 개발하고 있는가? 그 사이 고객의 니즈는 이미 바뀌었다. 낡은 UI, 식은 콘텐츠, 묵은 데이터로는 고객의 마음을 못 얻는다. 지금 당장 고객 10명을 만나라. 그들이 오늘 원하는 것을 물어보라. 그게 당신이 내일 아침 제공해야 할 '신선한 재료'다.
고객은 '지금 가장 신선한 경험'을 기억한다. 상한 음식, 이월 상품, 낡은 제품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의 고객'을 어떻게 관찰할지는 5장 〈설문조사〉에서, 이 신선함을 유지하는 조직 구조는 4장 〈미션〉에서 이어진다.)
참고 문헌
[1] "쿠팡",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쿠팡
[2] "비바리퍼블리카(토스)",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비바리퍼블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