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12세기 수학자가 알려준 고객의 비밀
"머피의 법칙은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뜻이 아냐. 언젠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지."
— 쿠퍼(Cooper),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중에서
"Murphy's Law doesn't mean that something bad will happen. It means that whatever can happen, will happen."
피보나치 수열이 당신 회사의 매출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믿는가?
숨겨진 한 명의 고객
우리가 만든 게임은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었고, 게임이 점점 어려워질수록 필요한 아이템은 유료로 구매하게 되어 있었다. 이른바 '부분유료화(freemium)' 모델이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한 푼도 쓰지 않고 즐겼지만, 소수의 유저가 반복적으로 결제해주는 덕분에 전체 매출이 유지됐다. 우리는 이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데이터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어느 날 회의 중에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유저들은 대체 몇 번이나 결제할까?"
그래서 게임 출시 이후 유저별 결제 횟수를 뽑아달라고 데이터 분석 담당자에게 요청했다. 그날 오후에 받아본 데이터는 충격적이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유저는 단 한 번도 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 마지막 끝에는 1년 동안 무려 3,000번이나 결제한 유저가 있었다. 정확히는 3,127번.
"이 데이터가 맞나요?"
나는 데이터엔지니어에게 다시 물었다. 1년에 3,127번을 구매했다면 매일 8.5번씩 구매했다는 이야기다. 주말도 없이, 휴가도 없이. 엔지니어와 함께 두 번, 세 번 확인해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모바일 프리미엄 게임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체 유저의 1~5%만 과금하고, 매출의 절반 이상이 상위 10% 과금 유저에게서 나온다는 통계가 있다.1 그런데 그 소수의 유료고객 중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케이스가 존재했다.
10단위 구간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
나는 궁금해졌다. 이 고객들은 어떤 패턴으로 구매하는 걸까? 첫 구매와 재구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구매횟수별로 고객 수를 정리한 표를 만들었다.
결제 횟수 분포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0–99회, 100–199회, 200–299회처럼 구간을 100단위로 나누고, 각 구간별 유저 수를 세어 막대그래프를 그렸다. 그런데 그래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런 인사이트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분포처럼 보였다. 데이터는 있는데, 전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림 1 — 결제 횟수를 100단위로 나눈 막대그래프. 단조 감소만 보이고, 전략적 인사이트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때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다. "이런 건 피보나치(Fibonacci) 수열로 나눠봐야 패턴이 보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피식 웃었다. 피보나치 수열이라니.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 공식이 갑자기 게임 비즈니스에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호기심은 무서운 추진력을 만든다. 피보나치 수열대로 구매 횟수 구간을 다시 나눠보기로 했다. 피보나치 수열은 아주 단순한 규칙에서 시작한다. 앞의 두 수를 더해 다음 수를 만든다.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
놀라운 건, 이 수열이 단순한 숫자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선형 조개껍데기, 해바라기 씨앗 배열, 파인애플 껍질 무늬 등 자연계에 거듭 등장하고, 황금비율(1.618…)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2
로그정규분포가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구매 횟수를 피보나치 수로 나누어 다시 도표를 그렸다. 1회, 2회, 3회, 5회, 8회, 13회, 21회, 34회, … 이렇게 점점 커지는 간격의 구간으로. 결과가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숨을 멈췄다. 마법같이 완벽한 로그정규분포(log-normal distribution) 곡선이 나타났다. 3회 이상 구매한 고객들의 분포가 마치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100단위 구간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던 패턴이었다. 일반적인 정규분포가 아니라, 긴 꼬리를 가진 로그정규분포를 따라가고 있었다.3

그림 2 — 같은 데이터를 1, 2, 3, 5, 8, 13, 21… 간격으로 다시 나누니 긴 꼬리를 가진 로그정규분포 곡선이 드러난다. 3회 이상 구매한 고객들의 재구매 패턴이 명확해진다.
더 놀라운 건 이 곡선에서 읽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 인사이트였다. 구매횟수 1-2회 구간에서 대규모 이탈이 일어났고, 3-5회 구간을 넘어선 고객들은 상당히 안정적인 재구매 패턴을 보였다. 8-13회 구간의 고객들은 우리 게임의 '핵심 팬층'이었고, 21회 이상 구매한 고객들은 사실상 '게임 중독자'에 가까웠다.
숫자가 전략을 먼저 말한다
이건 단순한 시각화의 차원이 아니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는 마케팅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이 곡선을 통해 '충성 유저'와 '이탈 유저'를 구분할 수 있었고, 어느 지점에서 유저들이 이탈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첫 구매 이후 2-3회까지의 구매를 유도하는 데 집중했다. 이 구간만 넘어가면 고객들이 안정적인 재구매 사이클에 진입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결제 횟수가 3회, 5회, 8회를 넘어갈수록 이탈률은 급격히 낮아졌고, 유저들은 '무언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21회 이상 구매하는 고객들에게는 과도한 마케팅을 자제했다. 이들은 이미 충분히 우리 게임에 몰입해 있었고, 더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즉, 전략을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유저에게 어떤 시점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누구에게 보너스를 주고, 어디서 가격 장벽을 낮춰야 할지를 숫자가 먼저 말해주고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개월 만에 유료고객 수가 40% 증가했고, 1인당 평균 구매금액도 25% 늘었다. 무엇보다 고객 이탈률이 크게 줄었다. 12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가 정리한 1, 1, 2, 3, 5, 8, 13, 21, 34… 이런 숫자 나열이 21세기 우리 게임 고객들의 지갑을 여는 비밀을 알려줬다.
자연은 피보나치를 좋아한다
사실 피보나치 수열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 조개껍데기 나선, 해바라기 씨앗 배열, 솔방용 비늘까지. 자연은 이미 수백만 년 전부터 이 수열을 써왔다. 모나리자(Mona Lisa)의 얼굴 비율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이런 걸 그냥 '신기한 잡학상식' 정도로만 여겼다.
전환점은 우리가 만든 모바일 게임의 데이터를 분석하던 순간이었다. 이 발견에 흥미를 느낀 나는 다른 영역에서도 피보나치 구간을 실험해봤다. 웹사이트 방문 횟수, 앱 실행 횟수, 심지어 직원들의 야근 횟수까지. 놀랍게도 많은 경우에서 기존의 등간격 구간보다 피보나치 구간이 더 명확한 패턴을 보여줬다. 특히 '초기 행동'이 중요한 지표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효과가 있었다.
이 결과에 재미를 느낀 우리는 농담 삼아 사다리타기로 정하는 간식 내기 벌금도 피보나치 수열로 정했다. 1,000원, 1,0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8,000원, 13,000원… 걸리는 사람의 고통도 피보나치 수열을 따라 증가했다. 다행히 직원이 10명 정도밖에 없어서 벌금이 10만 원을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고객은 자연법칙을 따른다
무질서해 보이는 데이터에도 항상 숨겨진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 질서를 발견하는 열쇠는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다.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데이터를 볼 때 직관적이고 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10단위, 100단위, 1,000단위. 깔끔하고 보기 좋다. 하지만 고객의 행동은 우리의 편의에 맞춰 일어나지 않는다. 고객은 자연법칙을 따른다. 그리고 자연은 피보나치를 좋아한다.
지금 당장 너의 핵심 지표를 꺼내봐라. 매출, 사용자 수, 구매 횟수, 방문 빈도, 뭐든 좋다. 기존의 등간격 구간 대신 피보나치 구간으로 나눠보라. 1, 1, 2, 3, 5, 8, 13, 21, 34, 55… 이 수열이 당신의 비즈니스에 숨겨진 패턴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12세기 수학자가 발견한 진리가 21세기 당신의 매출을 구원할 수 있다. 데이터를 보는 눈만 바꾸면 된다. (같은 '숫자가 말해준다' 원칙은 5장 〈설문조사〉의 정량 설계에서, 고객의 반복행동을 수익으로 엮는 구조는 3장 〈수익모델은 곱셈이 아니라 거듭제곱〉에서 이어진다.)
참고 문헌
[1] "Freemiu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reemium
[2] "Fibonacci sequenc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ibonacci_sequence
[3] "Log-normal distributio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og-normal_distrib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