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차고와 오피스텔
"큰 일도 작은 것에서 시작하니까요."
—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중에서
"Big things have small beginnings, sir."
모든 창업가에게는 '처음'이 있다. 누군가는 자기 집 차고였고, 누군가는 오피스텔, 혹은 대학 연구실 한구석이었다. 장소는 달랐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어수선하고 비좁고 불편했지만, 그 속에 모든 열정이 담겨 있었다는 것.
미국의 차고 — 창업 정신의 상징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은 로스알토스(Los Altos)에 있는 잡스 부모의 차고에서 애플(Apple)을 시작했다. 1976년 그곳에서 첫 번째 애플 컴퓨터를 조립했고, 세상에 내놓았다.1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시애틀 벨뷰(Bellevue)에 있는 자기 집 차고에서 1994년 아마존(Amazon)을 창업했다. 친구들과 포장 테이프를 끊으며 온라인 서점의 첫 주문을 준비했다. 구글(Google)은 멘로파크(Menlo Park)에 위치한 수전 워치츠키(Susan Wojcicki)의 집 차고에서 1998년 시작했다. 수전은 나중에 유튜브(YouTube) CEO가 됐다.
미국 주택의 차고는 자동차 두 대가 들어갈 만큼 넓고, 창업가들이 테이블 몇 개 놓고 사무실로 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차고 문화는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 차고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가족의 지지와 사회적 안전망을 의미한다. 실패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주변 이웃들도 창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차고는 미국 창업 문화의 상징이자 실용적인 해결책이었다.
한국의 오피스텔 — 좁지만 특별한 공간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복잡한 도심에 차고 딸린 집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설사 있다고 해도 상법상 차고지를 사무실로 등록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한국 창업가들은 다른 해답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연구실과 오피스텔이다.
1990년대 중반, 카이스트(KAIST) 전산학과의 연구실 구석에서 시작한 팀이 있다. 네오위즈(Neowiz)다. 기숙사와 연구실을 오가며 '원클릭' 인터넷 서비스로 국내 포털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넥슨(Nexon)은 강남의 성지하이츠II 2009호 오피스텔에서 태어났다. 김정주(Kim Jung-ju)와 송재경(Song Jae-kyung)은 침대, 책상, 컴퓨터 몇 대로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고, 그것은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에 남았다.
선데이토즈(Sunday Toz)는 더 특이하다. 명지대(Myongji University) 컴퓨터공학과 출신인 이정웅과 동기들은 2009년 창업을 결심했지만 처음엔 각자 직장을 다니면서 매주 일요일 강남역 토즈에 모여 일했다. 회사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Sunday Toz' — 일요일의 토즈. 그들은 주말마다 토즈에서 게임 개발을 준비하다가 드디어 본격 창업을 결심하고 분당의 한 오피스텔로 옮겨갔다. 직원이 늘어 공간이 비좁아지자 바로 앞 오피스텔을 하나 더 빌려 문을 열어둔 채 맨발로 왔다 갔다 하며 일했다. 2012년 그들이 만든 '애니팡'은 출시 74일 만에 다운로드 2,000만 건을 돌파하며 국민게임이 됐다.2 당시 스마트폰 이용자 세 명 중 두 명이 다운로드한 셈이다. 오피스텔에서 시작된 작은 게임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것이다.
오피스텔은 매우 한국적이다. 좁은 공간에 모여 살고, 주변에는 편의점과 지하철역이 있어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다. 사무실인 듯 주거공간인 듯, 편리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래서 창업가들에게는 최적의 공간이 됐다.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고, 실패해도 큰 손해가 없으며, 성공하면 언제든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
지금은 코워킹의 시대
창업 공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5년 브래드 뉴버그(Brad Neuberg)가 샌프란시스코에 '햇 팩토리(Hat Factory)'를 열면서 코워킹 문화가 시작됐고,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위워크(WeWork)와 로켓스페이스(RocketSpace)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는 수많은 스타트업의 초기 안식처가 됐다.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 테크스타스(Techstars) 같은 액셀러레이터도 실질적인 공간과 지원을 함께 제공한다. 드롭박스(Dropbox)와 에어비앤비(Airbnb)는 모두 와이 컴비네이터 창업보육 공간에서 피칭하고 투자받으며 스케일업에 성공했다.34
프랑스는 더욱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7년 파리에 문을 연 스테이션 F(Station F)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1920년대 철도 화물보관소를 개조한 이 공간에는 3,000명 이상의 창업자와 개발자, 30개 이상의 VC, 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전문 로펌,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페이스북(Facebook) 같은 테크 대기업이 함께 입주해 있다.5 이곳에서 닥톨립(Doctolib) 같은 유럽 유니콘이 성장했다.
중국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에는 처쿠(車庫) 카페가 있다. 한 달 100위안으로 카페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 130여 개 회사가 창업했고, 70여 개 회사가 투자금을 조달했다. 카페라는 친숙한 공간을 창업 허브로 만든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서울 강남 삼성역 인근 구글 캠퍼스 서울(Google Campus Seoul)은 아침부터 밤까지 창업자들로 북적인다. 디캠프(D.Camp), 마루180, 헤이그라운드, 프론트원 같은 민간·금융주도 창업 공간들도 성황이다. 네이버(Naver) D2SF, 롯데 벤처스,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등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시설들도 창업자에게 좋은 인프라를 제공한다. 카카오브레인(Kakao Brain)도 초창기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시작했고, 루닛(Lunit)처럼 수많은 초기 AI 스타트업들이 마루180을 거쳐 갔다.
다만 코워킹 모델에도 한계는 있다. 위워크는 2019년 IPO 시도가 기업가치 470억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폭락하며 무산됐고, 2023년 11월에는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가 2024년 구조조정을 거쳐 부활했다.6 공간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간이 창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이런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창업은 더 이상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다. 네트워킹과 협업, 멘토링이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됐다. 차고나 오피스텔에서의 고독한 작업보다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창업가들과의 교류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생각한다. 너무 완벽한 환경이 오히려 독이 되는 건 아닐까? 애니팡을 만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럭셔리한 코워킹 스페이스에 있었다면 그런 절실함이 나왔을까? 김정주가 2층 침대에서 자지 않고 5성급 호텔 같은 공간에서 일했다면 '바람의 나라'가 탄생했을까?
결국 공간이 창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창업가가 공간을 만든다. 차고든, 연구실이든, 오피스텔이든, 코워킹 스페이스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느냐다. 미국의 차고 문화와 한국의 오피스텔 문화, 그리고 지금의 글로벌 코워킹 문화는 모두 각자의 시대와 환경에 맞는 최선의 해답이었다.
창업을 망설이고 있다면 공간 때문에 고민하지 마라.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 성공한 창업가들은 모두 불완전한 공간에서 완벽한 꿈을 키웠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초기 팀을 누구와 만드느냐는 4장 〈공동창업자〉에서, 그 공간을 채워줄 투자자를 만나는 법은 6장 〈좋은 투자자를 알아보는 법〉에서 이어진다.)
참고 문헌
[1] "Apple I",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pple_I
[2] "애니팡",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애니팡
[3] "Dropbox",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Dropbox
[4] "Airbnb",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irbnb
[5] "Station F",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tation_F
[6] "WeWor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We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