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규칙보다 공통의 원칙
"혼돈의 경계선에서 단기적인 혼란을 수용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넷플릭스 창업자
"We built a company that tolerated some short-term chaos and we managed right on the edge of chaos."
의도된 혼돈
스타트업은 어지럽다. 줄 맞춰 정돈된 큐비클과 복도, 임원 혼자 쓰는 조용한 사무실, 잘 정리된 문서수납장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구글플렉스(Googleplex)라 불리는 구글(Google)의 본사 건물에 들어가면, 2층에서 1층으로 타고 내려오는 미끄럼틀, 짐볼, 푸스볼, 당구대, 아케이드 게임기, 당장이라도 밴드 연주를 할 수 있는 드럼과 기타, 너프건, 다트, 레고블록,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와 책상마다 어지러이 널려 있는 안드로이드 인형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라. 구글이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환경을 갖춘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창업한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학교 같은 사무실'을 원했다. 그래서 구글 본사를 "캠퍼스"라 부른다. 자유로운 업무공간과 환경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한 테크 스타트업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다.1
구글뿐 아니라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이런 업무공간을 선호한다. 픽사(Pixar)는 신입 사원에게 책상과 주변 업무공간을 꾸미라고 돈을 주기도 한다. 신입사원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창의적으로 꾸미는지 엄청난 경쟁이 붙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픽사는 《토이 스토리(Toy Story)》 같은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혼돈 속의 질서
혼란스러운 것은 업무공간만이 아니다. 스타트업의 시공간에는 알고리즘, 데이터분석, 합리적 의사결정, 고도화된 수학과 최신 기술 등 최고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감정과 심리, 용기, 직관적인 결정,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현실왜곡장과 같은 비합리적인 것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데이터 분석만이 성공으로 가는 왕도는 아니다. 때로는 디자이너의 재치 있는 장난이나 인턴으로 들어온 신입 마케터의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스타트업의 성공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며, 정해진 성공 공식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규칙이 아니라 합의된 가치
자율성과 융통성은 스타트업의 특권이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책임은 사라진다. 그래서 넷플릭스(Netflix)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세세한 규칙을 없애고, 큰 원칙 하나만 남겼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넷플릭스에는 휴가규정이 없다. 몇 일까지 써도 된다는 룰 자체가 없다. 언제 쉬어도 되고, 얼마나 쉬어도 상관없다. 대신 동료와의 협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지출 규정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승인 절차, 법인카드 사용범위 같은 가이드라인이 없다. 단 한 줄짜리 원칙이 전부다. "회사의 돈을 쓸 땐 내 돈처럼 신중하게 써라."
이런 문화를 처음 도입한 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직원들이 점점 규정을 따르느라 생각을 멈추는 것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 특히 고성과자들이 회사를 떠나고, 평균적인 직원들이 조직에 남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 복지보다 성과, 룰보다 원칙, 통제보다 신뢰를 택했다.2
한 사례가 있다. 한 매니저가 출장 중에 호텔에서 고급 와인을 마시고 경비 처리한 일이 있었다. 회사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매니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 와인이 정말 업무에 도움이 되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던 그 매니저는 스스로 퇴사했다. 규칙은 없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신뢰를 기반으로 일한다."
나는 점심시간, 출근시간 같은 관행들도 의심한다. 왜 항상 9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9시 1분은 안 되는가? 나는 결과주의자다. 만약 일주일 동안 모든 사람들이 기다려온 마감이 9시였다면 5분 지체하는 것은 큰 손실이다. 하지만 아무런 일이 없는데, 버스를 놓쳤다는 이유만으로 허둥대며 달려올 필요는 없다.
스타트업에 규칙이 없는 건 아니다. 대신 그들은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애플(Apple)은 완벽한 디자인이 액세서리 호환성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블리자드(Blizzard)는 출시일을 미뤄도, 완성도 높은 게임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3 구글은 정시에 출근하는 것보다 검색 품질을 높이는 게 우선이다.
자유롭되, 합의된 가치를 지킨다. 자율적이되, 핵심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바로, 혼돈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스타트업은 그런 곳이다. 혼돈 속에서 일하고, 그 안에서 질서를 만든다. (규칙 대신 가치로 움직이는 조직 문화는 4장 〈기업문화〉에서 더 깊이 다룬다. 넷플릭스 문화의 극단적 적용은 4장 〈가족 같은 회사〉에서 이어진다.)
질서를 세우는 건 규칙이 아니라 '공통의 가치'다.
참고 문헌
[1] "Googleplex",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oogleplex
[2] Reed Hastings and Erin Meyer. No Rules Rules: Netflix and the Culture of Reinvention. Penguin Press, 2020. https://www.goodreads.com/book/show/49099937-no-rules-rules
[3] "Blizzard Entertainmen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lizzard_Entertai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