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태풍이 불면 돼지도 난다
"그 어떤 그로스해킹, 기발한 마케팅 아이디어, 어벤저스 영업팀도 뛰어난 제품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 샘 알트먼(Sam Altman), 오픈AI CEO, 전 와이콤비네이터 CEO
"No growth hack, brilliant marketing idea, or sales team can save you long-term if you don't have a sufficiently good product."
바람이 불 때 누구나 날 수 있다
1990년대 말, MP3 플레이어가 열풍이었다. 새한정보통신이 1998년 세계 최초로 휴대용 MP3 플레이어 'mpman'을 만들었고, 아이리버(iRiver)와 코원(Cowon)이 뒤를 이었다.1 소니(Sony), 델(Dell) 같은 대기업은 물론 수십 개의 중국 브랜드가 쏟아졌다. 애플(Apple)의 아이팟(iPod)과 같은 멋진 제품도 있었다. 그 시기엔 웬만한 제품만 만들어도 팔렸다.
뜨는 시장에 뛰어들 때는 치열하게 경쟁우위를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내 실력 때문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이 불 때는 기술력보다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광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람이 멈추고 나서 살아남은 기업은 거의 없다. 지금 누가 새한정보통신을 기억하는가?
1990년대 말 인터넷 열풍이 불었을 때, 너도나도 웹페이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당시 HTML을 좀 만질 줄 알았던 프로그래머들 앞에는 웹사이트 개발을 의뢰하기 위해 돈다발을 들고 줄 서는 고객들로 넘쳐났다. 실력 없는 개발자들도 인터넷과 웹사이트 개발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고객들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가며 겨우 웹사이트 몇 페이지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광풍이 지나자, 이제는 고객들도 웹사이트 개발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HTML 기술 자체도 더 쉬워지고 자동화되었으며, 마치 전기처럼 인터넷의 기초자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시장은 진정되었고, 웹 개발 비용을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누가 실력 있는 웹 기획자인지, 웹 프로그래머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태풍이 가라앉자 누가 돼지이고 누가 황새인지 알게 된 것이다.
2024년의 AI 태풍
요즘 인공지능 열풍이 비슷하다. 과거 수십 년간 머신러닝은 일부 대학교수들의 연구실 문을 넘기 어려웠다. 하지만 딥마인드(DeepMind)의 알파고(AlphaGo)가 2016년 이세돌을 이기고,2 아마존(Amazon)의 인공지능 알렉사(Alexa)가 인간과 대화하면서 상품을 주문하고, 구글 포토(Google Photos) 앱이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자전거인지 고양이인지 알아서 분류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2022년 11월, 오픈AI(OpenAI)가 챗GPT(ChatGPT)를 공개하자 전 세계가 놀랐다. 출시 두 달 만에 월간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며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컨슈머 앱이 되었다.3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도, 누구나 그 효용을 느낄 수 있었다. 몇 줄 대화를 주고받아도 마치 비서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검색보다 더 빠르고, 요약보다 더 똑똑했다.
그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AI 스타트업이 쏟아졌다. 2023–2024년 미국 벤처 자금의 약 30–40%가 AI 분야로 흘러들었다.4 심지어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AI 기반 서비스입니다'라는 슬로건만으로 투자금을 받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머신러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아는 척하는 가짜 기술자들이 많이 생겼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들에 속아 투자를 하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거금을 주고 머신러닝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채용한다.
이럴 때를 경계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떠들 때 누가 숨은 실력자인지 가려내야 한다. 챗GPT 래퍼(wrapper)에 불과한 회사들이 1억 달러 가치를 평가받고, 모델 가격이 1년 만에 100분의 1로 떨어지는 시장에서, 진짜 가치를 만드는 회사는 극소수다.
바람이 멈춘 뒤를 준비하라
훈풍 속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게 전부 내 실력 때문은 아니다. 나는 바람이 없으면 날지 못하는 돼지일 수 있다. 유행을 탔다고 자만하지 마라. 투자받았다고 자부하지 마라. 바람은 언젠가 멈춘다. 바람이 없을 때에도 날 수 있도록 준비한 스타트업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는다.
바람이 멈췄을 때에도 날 수 있는가? 태풍이 불 때 날아오른 창업가는 많았다. 태풍이 그친 뒤에도 여전히 날고 있는 창업가는 이 질문에 이미 답을 찾아둔 사람들이었다. (광풍이 끝난 뒤 살아남는 법은 3장 〈버블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서 다룬다. 같은 '바람과 실력'의 구분 문제는 1장 〈운과 때〉에서 처음 다뤘다.)
참고 문헌
[1] "MP3 플레이어 (MP3 player)",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P3_player
[2] "알파고 대 이세돌 (AlphaGo versus Lee Sedol)",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lphaGo_versus_Lee_Sedol
[3] Krystal Hu. "ChatGPT sets record for fastest-growing user base — analyst note." Reuters, February 2, 2023. https://www.reuters.com/technology/chatgpt-sets-record-fastest-growing-user-base-analyst-note-2023-02-01/
[4] "State of Private Markets: Q4 2024", Carta. https://carta.com/data/state-of-private-markets-q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