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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나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경쟁자는 지금 어느 창고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스타트업이다."

— 빌 게이츠(Bill Gates), 켄 올레타(Ken Auletta), 《디지털 워(Digital Wars)》 중에서

"I fear someone in a garage who is devising something completely new."

"대기업이 당신과 유사한 서비스를 만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스타트업 피칭에서 투자자나 심사위원들이 하는 흔한 질문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대기업에 반대로 묻고 싶다.

"지금 막 창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당신의 사업을 위협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변화하는 시장과 규제, 성장에 대한 압박, 한정된 자원은 스타트업이나 대기업 모두에게 작용한다. 대기업들도 이러한 사업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20년이 넘도록 카메라 필름 사업으로 독과점을 누려온 코닥(Kodak)은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2012년 파산신청을 냈다.1 2000년대 중반 전 세계 휴대폰 두 대 중 한 대를 팔던 노키아(Nokia)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거친 뒤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 헐값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2 미국에서 9,000개 가까운 비디오대여점 체인을 가지고 있던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오프라인의 또 다른 경쟁자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떠오른 넷플릭스(Netflix) 때문에 2010년 파산했다.3

이런 사건들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같은 업종, 같은 시장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정글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독사처럼 다른 방향에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느닷없이 다가오는 경쟁자에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이 현상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명명했다. 그의 1997년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 따르면, 기존 대기업이 몰락하는 것은 '경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고객에게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한 합리적 의사결정 때문'이다 — 현재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저가·저기능 제품을 내부적으로 우선순위에 두기 어렵기에, 그 틈새를 파고드는 스타트업에게 시장을 내주게 된다.6

작은 조직이 이기는 법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어떻게 대기업을 이길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다. 고객에 집착하고, 시장보다 빠르게 움직여라. 대기업은 수십 번 회의가 끝나야 움직인다. 스타트업은 메시지를 보고 바로 수정한다. 대기업은 완벽한 제품을 기획한다. 스타트업은 불완전한 제품으로 고객을 만나고 배운다. 이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치명적인 격차가 된다.

한국의 토스(Toss)는 은행도 아니고 증권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금융 앱을 압도했다. 처음엔 간편송금 하나로 시작했지만, 고객의 불편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하나씩 무너뜨렸다. 2024년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Viva Republica)의 누적 가입자는 2,800만 명을 넘었고, 모회사는 미국 상장을 추진했다.4 신한·국민·하나 같은 시중은행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고객 기반을, 토스는 10년 만에 따라잡았다. 고객이 가장 싫어하는 은행의 '느림'과 '복잡함'을 정조준한 결과였다.

피그마(Figma)도 마찬가지다. 어도비(Adobe)가 장악하고 있던 디자인 툴 시장에, 구글 독스(Google Docs)처럼 실시간 협업되는 제품 하나로 파고들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협업이 폭발하자 피그마는 '디자이너의 슬랙(Slack)'이 되었다. 어도비는 결국 이 회사를 200억 달러(약 26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비록 영국·EU 반독점 당국이 막아 인수는 무산됐지만, 이 사건 자체가 스타트업이 카테고리 리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5

작은 조직이 이기는 법은 다르다. 빠르게 움직이고, 고객에 집착하고, 실험을 반복하라. 대기업은 그걸 흉내 낼 수 없다. ('한정된 자원을 무기로 쓴다'는 관점은 1장 〈가난은 스타트업의 경쟁력〉에서 다뤘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체적 방법은 3장 〈MVP는 제품이 아니라 태도〉에서 이어진다.)

참고 문헌

[1] "이스트만 코닥 (Eastman Koda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Kodak

[2] "노키아의 모바일 사업부 매각 (Microsoft Mobil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icrosoft_Mobile

[3] "블록버스터 LLC (Blockbuster LLC)",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lockbuster_LLC

[4] "비바리퍼블리카 (Toss / Viva Republica)", Wikipedia (한국어). https://ko.wikipedia.org/wiki/비바리퍼블리카

[5] Jay Peters. "Adobe abandons $20 billion Figma acquisition." The Verge, December 18, 2023. https://www.theverge.com/2023/12/18/23984448/adobe-abandons-figma-acquisition

[6] Clayton M. Christensen. "The Innovator's Dilemma: When New Technologies Cause Great Firms to Fail."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1997. 파괴적 혁신 이론의 원전 — 대기업이 '합리적 경영'을 하면서도 스타트업에게 시장을 내주는 메커니즘을 체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