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 MVP는 제품이 아니라 태도
"전쟁 준비가 다소 완벽하지 못해도 속전속결을 추구하여 승리한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장기전을 추구하여 승리한 전례는 아직껏 본 적이 없다."
— 손무(孫武), 《손자병법(The Art of War)》 중에서
"In war, then, let your great object be victory, not lengthy campaigns."
스타트업이 가진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스피드다. 남들보다 더 빨리 할 수 있으니까 스타트업이다. 대기업이 여러 부서의 의견을 모으고 사업성 검토를 하고 끝없는 회의를 하면서 업무조율을 하고 있을 때 스타트업은 시장에 제품을 내놓고 승부를 봐야 한다.
4개월짜리 앱과 30분짜리 가설
어느 날 한 창업가가 찾아왔다. 스마트폰 앱으로 출장세차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세차 전문가를 찾을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다"면서, 외주 개발사에 맡겨서 앱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비싼 외주 앱 개발사를 고용해서 서비스를 개발 중이었고, 함께할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찾고 있었다. 출시는 최소 4개월 뒤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1년이 지나도 앱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출장세차가 필요한지, 수요가 있는지, 실제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가 무엇인지,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알기 위해 앱이 필요하지는 않다. 엑셀, 구글 폼(Google Forms), 문자메시지, 메신저면 된다. 고객을 만나고, 예약을 받아보고, 문제를 겪어보면 된다. 앱은 이런 가설들이 충분히 검증된 다음에 만들어도 늦지 않다. 경쟁력은 앱이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세차서비스'의 가치에서 나온다. 창업가가 할 일은 '보여주는 앱'이 아니라, '검증하는 MVP'를 만드는 것이다.
자포스: 옆 가게에서 운동화를 사 와서 팔다
1999년 온라인으로 신발을 파는 자포스(Zappos)를 창업하면서 토니 셰이(Tony Hsieh)와 닉 스윈먼(Nick Swinmurn)은 "정말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신발을 구매할 것인가?"라는 가설부터 검증하고 싶었다. 다행히 상품 사진을 전시하고 고객들이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는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근처 운동화 매장으로 달려가 전시된 운동화들의 사진을 찍어서 자포스 웹사이트에 올렸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사진을 보고 주문하면, 그가 매장으로 달려가 운동화를 사서 고객에게 배송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고객의 수가 조금 늘어나자, 그들은 고객들의 구체적인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사이즈가 안 맞을 때 반송은 어떻게 하는지, 웹사이트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효과적인지, 고객응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상품을 재고로 확보해두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되었고, 점점 체계를 갖춘 온라인 쇼핑몰로 발전했다. 자포스는 2009년 아마존(Amazon)에 약 12억 달러에 인수됐다.1
드롭박스: 제품 대신 영상
드롭박스(Dropbox)의 창업자 드류 휴스턴(Drew Houston)은 초기에 제품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제품이 있는 척했다. 그는 파일을 저장하고 동기화하는 서비스가 정말 필요한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다만 그가 만든 건 코드가 아니라 영상이었다.
사용자가 파일을 드래그하면 자동으로 저장되고,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곧바로 뜨는 듯한 화면을 보여줬다. 사실은 전부 연출된 장면이었다. 그 영상 하나로 그는 7만 명이 넘는 대기자 리스트를 확보했다. 제품도 없이 시장의 니즈를 확인한 것이다.2 그때서야 그는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포잉: 사람이 손으로 자동화를 흉내 내다
2010년 즈음 아블라컴퍼니의 이창수는 서울의 유명 식당들을 스마트폰 앱으로 찾아보고 예약할 수 있는 포잉(Poing)을 개발했다. 고객들은 앱에 있는 예약버튼을 누르면 잠시 후 예약이 확인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는데, 마치 자동으로 간편하게 예약까지 해주는 편리한 서비스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가로수길에 있는 포잉 사무실 직원들이 웹사이트를 보고 있다가 누군가 예약버튼을 누르면 직접 해당 식당에 전화를 걸어 고객이 원하는 대로 예약해 주었다. 고객들은 예약버튼을 누르고 확인문자가 오기까지 몇 분 동안 직접 사람들이 움직이는지는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고객들이 점차 예약버튼의 편리함을 좋아하게 되자, 포잉은 이 과정을 자동화했다.
이런 방식을 실리콘밸리에서는 '오즈의 마법사 MVP(Wizard of Oz MVP)'라고 부른다.4 무대 뒤에 사람이 서서 자동화의 환상을 만든다. 2024년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AI 에이전트 분야에서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율 에이전트'를 출시하지만, 초기엔 사람이 ChatGPT 화면을 들여다보며 답을 다듬는다. 자동화는 마지막에 온다, 처음이 아니라.
검증하는 MVP를 만들어라
지금 개발하거나 개선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더 빠르고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반드시 모든 기능이 들어간 완벽한 앱이나 기술, 데이터베이스, 완전한 형태의 웹사이트가 필요할까?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구상한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슬라이드 이미지 몇 장이면 된다. 첫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 한 통이면 충분하다. ('아이디어보다 실행'이라는 같은 정신은 2장 〈원대한 아이디어보다 하찮은 실행이 낫다〉에서 다뤘다. MVP 다음 단계인 수익모델 설계는 3장 〈수익모델은 곱셈이 아니라 거듭제곱〉에서 이어진다.)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
최소기능제품 MVP는 에릭 리스(Eric Ries)의 책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에 의해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3 MVP는 초기 고객들이 원하는 핵심기능만 최소한으로 구현한 제품을 말한다. MVP는 제품에 원래 의도대로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구현하고자 하는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고객들의 피드백을 얻어 다음 개선 사이클의 모델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한다. MVP는 간단한 사이트일 수도 있고, 골판지로 만든 모형일 수도 있다. 때로는 유형의 제품이나 웹사이트, 앱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세차예약이나 중고물품 거래와 같은 서비스 아이디어가 있다면 잘 만든 블로그와 스마트폰 메신저만으로도 비즈니스의 핵심모델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참고 문헌
[1] "Zappos",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Zappos
[2] "Dropbox (servic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Dropbox
[3] "The Lean Startup",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he_Lean_Startup
[4] "Minimum viable product — Wizard-of-Oz techniqu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inimum_viable_produ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