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버블은 끝이 아니라 시작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 타일러 더든(Tyler Durden),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 중에서
"It's only after we've lost everything that we're free to do anything."
"나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 그건 '현재'를 방해할 뿐이야."
— 에드나 모드(Edna Mode), 영화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 중에서
"I never look back. It distracts from the now."
시장의 열기가 뜨거울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지금 버블이 아니냐고 묻는다. 시장상황이 조금만 좋지 않다 싶으면 곧 버블이 꺼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버블이 생기고 꺼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그것이 없는 세상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1999년: 광기의 절정과 추락
1990년대 말, 실리콘밸리는 광기에 가까웠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믿음 하나로, 아무 제품도 없이 상장하는 회사들이 줄을 섰다. "닷컴(.com)"이라는 말만 붙이면 주가가 두세 배는 기본이었다. 매출은커녕 사용자도 없는 회사가 하루아침에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1999년, 나스닥(NASDAQ)은 한 해 동안 85%가 올랐다.1 그 열기 속에서 일론 머스크(Elon Musk)도 집2(Zip2)를 매각한 직후 억대 자산가가 되었다. 1999년, 그는 컴팩(Compaq)에 회사를 판 돈으로 맥라렌 F1(McLaren F1) 슈퍼카를 구입했다. 당시 가격은 100만 달러. 불과 20대 후반의 청년이 만들어낸 인터넷 기업이 그렇게 빠르게 부(富)로 전환됐다.2 벤처캐피털은 유망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먼저 들어가서 나중에 되팔 수 있는 회사를 찾는 도박판이 되었다.
그 끝은 갑작스럽게 왔다. 2000년 3월,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고, 일부 닷컴 기업의 회계 부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불안해졌고, 믿음은 금세 공포로 바뀌었다. 단 하루 만에 나스닥이 10% 넘게 폭락했다. 한 달 만에 수천 개 기업의 기업가치가 증발했고, 투자자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웹밴(Webvan), 펫츠닷컴(Pets.com), 이토이스(eToys) 같은 스타트업들이 수조 원 규모의 자금과 함께 증발했다.3
실리콘밸리의 거리에는 '사무실 임대' 사인이 넘쳐났고, 카페에는 전직 CEO들이 이력서를 고치며 앉아 있었다. 모두가 허망했다.
하지만 그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창업가들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진짜 수익이 나는 사업, 사용자 기반이 탄탄한 모델, 그리고 데이터에 근거한 성장지표를 찾기 시작했다. '멋져 보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견디는 비즈니스'를 고민하게 됐다. 버블은 잔혹했지만, 쓸모없는 환상을 씻어냈다. 그 폐허 위에서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넷플릭스(Netflix)는 다시 일어섰다.
2022-2023년: 디지털 자산 버블과 SVB
비슷한 사이클이 25년 뒤 다시 돌아왔다. 2021년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을 타고 암호화폐와 핀테크가 폭발했다. 그러나 2022년 11월, 시가총액 320억 달러였던 암호화폐 거래소 FTX(에프티엑스)가 부정 회계로 무너졌고,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는 25년 형을 선고받았다.4
석 달 뒤인 2023년 3월, 미국 16위 은행이자 스타트업 산업의 기둥이었던 실리콘밸리뱅크(Silicon Valley Bank)가 단 36시간 만에 파산했다.5 한때 'SVB 통장이 없으면 진짜 스타트업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돌던 은행이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운영자금을 잃을 뻔했고, 미 연방준비제도가 긴급 개입해서야 진정됐다.
그러나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새로운 줄기가 자랐다. 2022년 말 등장한 챗GPT(ChatGPT)와 2023년 본격화된 생성형 AI 붐은 새로운 사이클을 만들었다. 2년 만에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페플렉시티(Perplexity), 미스트랄(Mistral) 같은 회사들이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만들었다.
1975년: 불황 속에서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1975년,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앨런(Paul Allen)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창업했다. 당시는 미국 경제가 깊은 불황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1973년 오일쇼크의 여파로 물가는 치솟고, 실업률은 9%를 넘었다. 기업들은 줄줄이 구조조정을 했고, 투자자들은 움츠러들었다.6
하지만 게이츠는 불황의 '어두운 시간'이 오히려 큰 변혁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 기회가 생긴다(Difficult times can spark great reforms)." 70년대 중반 경제 불황으로 인해 비용은 낮았고, 인재는 넘쳐났다. 기존 기업들이 주저하는 사이, 그는 BASIC 언어를 알테어(Altair) 컴퓨터에 이식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이 불황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뛰어난 인재를 그 가격에 쓸 수도 없었고, 기성 기업들이 자리를 비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게이츠는 위기의 시기에 태어난 창업가였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남들보다 빨리, 깊게, 멀리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시장이 협곡의 바닥에 있을 때야말로 창업을 하기 좋은 시기다. 시장상황이 어려워서 모두가 떠났을 때, 그때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시장 위험을 친구로 만드는 태도는 1장 〈위험은 내 친구〉에서 다뤘다. 광풍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가짜 실력자 문제는 3장 〈태풍이 불면 돼지도 난다〉에서 이어진다.)
참고 문헌
[1] "닷컴 버블 (Dot-com bubbl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Dot-com_bubble
[2] "일론 머스크 (Elon Mus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Elon_Musk
[3] "Pets.co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ets.com
[4] "FTX",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TX
[5]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Collapse of Silicon Valley Ban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Collapse_of_Silicon_Valley_Bank
[6]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History of Microsof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Micros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