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관찰하고 공감하기
"밖으로 나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 엘리, 영화 《업(Up)》 중에서
"You just have to step out there to find it."
— Ellie, from Up
모든 아이디어는 작은 발견에서 시작된다. 길을 걷다가, 카페에 앉아 있다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순간에도 '왜 저 사람은 저 앱을 쓰고 있을까?' '왜 저 가게만 사람이 몰릴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이미 절반은 창업가다. 그 궁금증이 쌓이고, 관찰이 반복되고, 어느 날 통찰로 이어질 때 창업 아이디어는 찾아온다.
나도 2000년대 중반, 온라인 게임에 투자할 기회를 찾고자 무작정 PC방을 들락거렸다. 어떤 게임을 하는지, 몇 명이 플레이하는지, 남녀 비율은 어떤지 조사해서 엑셀표에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FPS 게임 몇 개, RPG 게임 몇 개, 스포츠 게임 몇 개, 남자 손님 몇 명, 여자 손님 몇 명, 나이대는 대략 어떤지 적어 나가는 식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유명 연구기관의 시장조사 보고서가 있었지만, 남이 숫자로 쓴 보고서가 주지 못하는 감각은 현장에서 생겼다.
지금도 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스마트폰 화면을 곁눈질로 본다. 누구는 유튜브(YouTube)로 예능을 보고, 누구는 게임을 하고, 누구는 네이버 웹툰을 본다. 요즘엔 이런 패턴도 바뀌고 있다. 짧은 영상 클립을 보는 사람보다, ChatGPT나 AI 툴을 열어 자기 업무를 준비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런 변화는 어떤 연구보고서에도 실시간으로 적히지 않는다. 직접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연구보고서는 좌뇌의 궁금증을 채우고, 관찰 습관은 우뇌의 궁금증을 채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제록스(Xerox) 연구소에서 처음 마우스를 보고 직관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맥킨토시(Macintosh)에 적용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제록스의 연구원들은 마우스를 혁신적인 장치로 개발했지만, 실제 사용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아 연구소 안에서만 사용되던 장치였다. 잡스는 즉각적으로 마우스가 일반 사용자들에게 직관적인 컴퓨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수많은 소비자 행동을 평소 철저히 관찰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기술과 경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집요하게 몰두해온 덕분에, 마우스라는 기술을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으로 전환해 매킨토시에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1
최근에는 비리얼(BeReal)이라는 사진 기반 SNS가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틱톡(TikTok)처럼 '꾸민 삶'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자는 간단한 아이디어였다. 창업자 알렉시스 바레야(Alexis Barreyat)는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모두가 동시에 사진을 찍는다면 재미있겠다는 발상에서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복잡한 알고리즘이나 트렌드 분석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지루함과 과장된 SNS에 대한 피로감을 날카롭게 관찰했기 때문에 나온 서비스였다.2
반대로, 비슷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간과했던 스타트업도 있다. 쥬세로(Juicero)는 미국의 가정용 콜드프레스 주스 기계를 만들었다. 정기 배송되는 전용 팩을 기계에 넣으면 자동으로 주스가 추출되는 방식이었다. 창업자는 이 기계가 신선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줄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이 '혁신적인' 기계가 너무 비쌌고(기계만 400달러), 무엇보다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팩을 짜도 똑같이 주스가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더 저렴하고 간단한 방식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 굳이 복잡하고 비싼 제품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시장은 '정교한 하드웨어'보다 '편리한 경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가고 있었지만, 창업자는 이를 보지 못했다. 결국 쥬세로는 단 1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3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의 공동창업자 톰 켈리(Tom Kelley)는 "좋은 제품은 관찰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칫솔 회사 오랄비(Oral-B)가 아이디오에 어린이용 칫솔 디자인을 의뢰했을 때, 아이디오 팀은 가장 먼저 어린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를 닦는지 관찰하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이 칫솔질을 어떻게 하는지는 보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오랄비의 임원진은 의아해했다. 수십 년 동안 칫솔만 연구해온 회사 아닌가. 하지만 아이디오 팀이 미국 가정에서 평범한 어린이들이 칫솔질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손가락을 자유롭게 쓰는 어른과 달리 어린이들은 가늘고 잘 미끄러지는 칫솔을 제대로 잡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어린이들은 손가락으로 칫솔을 잡는 대신 주먹을 쥐듯 손바닥으로 칫솔을 움켜쥐고 겨우 칫솔질을 하고 있었다. 이 작은 발견을 통해 아이디오는 두껍고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새로운 어린이 칫솔을 설계했고,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4 아이디오의 대표 팀 브라운(Tim Brown)은 이런 관찰-공감-프로토타이핑 방법론을 "디자인씽킹"이라는 이름으로 경영 전략에 옮겨 놓았다.6
스탠퍼드(Stanford)의 디스쿨(d.school) 역시 철저한 사용자 관찰과 공감을 강조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실제 사용자를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제품과 서비스의 초기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만들어 사용자 반응을 살핀다. 예를 들어, 디스쿨의 한 프로젝트는 병원 응급실의 환자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의사와 환자들의 행동을 오랜 시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결과 환자 흐름을 최적화하는 간단한 시각적 안내 시스템이 탄생해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5
관찰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현장에 가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사용자의 불편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태도. 이 태도가 빠진 아이디어는 결국 창업자의 머릿속에만 머문다. (관찰한 가설을 고객에게 직접 검증받는 방법은 바로 다음 글 〈고객에게 검증받아라〉에서 이어진다.)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
톰 켈리가 쓰는 혁신 방법을 디자인씽킹이라고 한다. 데이터 중심 접근과 달리, 사용자의 행동이나 업무 프로세스를 면밀히 관찰해 혁신적인 디자인이나 프로세스 개선을 만들어낸다. 기업의 제품 기획이나 업무 프로세스 개선뿐 아니라 공공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아이디오(IDEO)와 스탠퍼드 디스쿨이 이 방법을 널리 알렸다. 팀 브라운(Tim Brown)의 《디자인에 집중하라(Change by Design)》가 입문서로 좋다.
참고 문헌
- Wikipedia contributors. "Steve Jobs." Wikipedia. 1979년 Xerox PARC 방문과 GUI / 마우스 아이디어를 Macintosh에 도입한 과정.
- Wikipedia contributors. "BeReal." Wikipedia. Alexis Barreyat의 2020년 창업, 10대 사용자 확산, "꾸미지 않은 SNS" 콘셉트의 초기 성공.
- Olivia Solon. "Silicon Valley's $400 juicer may be feeling the squeeze." The Guardian, September 1, 2017. Juicero의 16개월 운영 종료와 소비자 조롱.
- Wikipedia contributors. "IDEO." Wikipedia. 어린이용 칫솔 Oral-B 프로젝트와 IDEO의 디자인씽킹 방법론 배경.
- Wikipedia contributors. "Hasso Plattner Institute of Design (d.school)." Wikipedia. Stanford d.school의 사용자 관찰 중심 디자인 교육 방법론.
- Tim Brown. "Design Thinking." Harvard Business Review 86(6), 84–92, June 2008. IDEO 대표의 디자인씽킹 HBR 매니페스토 — 관찰·공감·프로토타이핑을 경영 프레임으로 확장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참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