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운과 때
"달링,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거야."
— 에드나 모드(Edna Mode), 영화 《인크레더블》 중에서
"Darling, luck favors the prepared."
— Edna 'E' Mode, from The Incredibles
흔히 운이 중요하다는 말을 할 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한다. 스타트업은 운칠복삼(運七福三)에 가깝다. 그만큼 행운과 타고난 복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스타트업은 누구나 열심히 한다. 밤낮없이, 주말과 휴가도 반납하고 성공을 위해 일한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스타트업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정말 때가 되어 운과 복이 왔을 때 올라탈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찰나의 차이로 누구는 그 '운'과 '때'를 타고 성공하고, 누구는 그러지 못한다.
2012년 여름,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은 느닷없이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가 되었다. 유튜브(YouTube)에 올린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아 10억 번 넘게 재생됐다. 어린아이부터 뉴욕의 셀럽, 남미 어느 골목의 상인까지 전 세계가 따라 불렀다.
하지만 싸이는 정말 느닷없이 세계적 팝스타가 된 걸까? 〈강남스타일〉 발표 당시 싸이는 이미 데뷔 12년 차에 공식 앨범만 18장을 낸 중견 가수였다.1 만약 싸이가 식어가는 인기에 좌절해 앨범을 낼 때마다 줄어드는 판매량에 무너졌다면, 10년 넘게 어떻게 팬들과 소통할지 고민해오지 않았다면,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파도를 이렇게 잡을 수 있었을까?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온라인 식료품 배달이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성공했다.
1996년 닷컴 광풍 시대에 등장한 웹밴(Webvan)은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도했다. 세콰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 벤치마크 캐피털(Benchmark Capital), 소프트뱅크(SoftBank) 등 유명 투자자들이 4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고, 1999년에는 5조 원이 넘는 기업가치로 상장했다. 하지만 2001년 파산했다. 문제는 기술도, 자금도, 아이디어도 아니었다.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인터넷 보급률이 50%를 넘긴 건 2005년경. 1999년은 신선식품을 웹으로 주문받아 배달하기엔 너무 일렀다.2
같은 아이디어가 2012년에 인스타카트(Instacart)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아마존(Amazon) 출신 아푸바 메타(Apoorva Mehta)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모바일 결제가 자리 잡고 공유경제 개념이 익숙해진 그 시점에 같은 문제를 다시 풀었다. 시장은 무르익었고, 인스타카트는 창업 3년 만에 기업가치 2조 원의 유니콘이 되었다.3
한국에서도 비슷한 타이밍의 경주가 있었다. 마켓컬리는 2015년 샛별배송으로 냉장 유통·물류센터 자동화·프리미엄 큐레이션을 무기 삼아 시장을 개척했고,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소비 급증이라는 외부 파도를 그대로 올라탔다.4 쿠팡은 소셜커머스에서 출발했지만 로켓배송이라는 자체 물류로 전환하며 모바일 쇼핑 증가·팬데믹이라는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었고, 2021년 뉴욕증시에 상장했다.5
웹밴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14년 일찍 도착했을 뿐이다.
가장 최근의 '때'는 생성형 AI다. 오픈AI(OpenAI)는 2015년 설립 이후 7년간 GPT 계열 언어 모델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2022년 11월 말, 오픈AI는 기존 GPT-3.5를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감싼 ChatGPT를 공개했다. 출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 2개월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소비자 인터넷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이었다.6
하지만 "느닷없이 ChatGPT가 터졌다"는 말은 반만 맞는다. 오픈AI는 몇 년 동안 GPT-2, GPT-3를 공개하며 모델 크기와 능력을 축적해왔다. 구글(Google)과 메타(Meta), 그리고 수많은 AI 연구소도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채팅이라는 익숙한 포맷, 무료 공개, 적절한 시점이 맞아떨어진 것은 오픈AI였다. 그 한 번의 결정이 회사의 운명을 바꿨고, 2024년 오픈AI의 기업가치는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뒤에는 '운과 때'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운과 때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싸이가 유튜브라는 매체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듯, 웹밴이 실패한 자리에 등장한 인스타카트, 마켓컬리, 쿠팡은 각자의 시장에서 흐름을 먼저 감지하고 올라탄 선수들이었다. 오픈AI는 AI의 임계점을 향해 7년을 준비했다.
스타트업의 성공에는 운과 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때를 잘 맞추는 것도 실력이다. 기다리는 것을 넘어 그 타이밍이 언제 올지 예측하고, 때가 왔을 때 올라탈 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살피고, 스스로 통찰력을 기르자. 계속된 실패에도 다시 시도할 수 있어야 하며, 마침내 모든 운이 내 주위로 모여들 때 남들보다 10배 더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견디는 태도는 4장 〈실패중력장〉에서, 작은 자원으로 실험을 이어가는 방법은 1장 〈가난은 스타트업의 경쟁력〉에서 다뤘다. '준비'를 실제로 어떻게 훈련할지는 1장 〈창업가 연습〉에서 이어진다.)
참고 문헌
- Wikipedia contributors. "Gangnam Style." Wikipedia. 2012년 7월 15일 공개, 같은 해 12월 유튜브 조회수 10억 회 돌파. 싸이는 당시 데뷔 12년 차의 중견 가수였다.
- Wikipedia contributors. "Webvan." Wikipedia. 1996년 창업, 1999년 IPO, 2001년 파산. 닷컴버블 시기 대표 실패 사례.
- Wikipedia contributors. "Instacart." Wikipedia. Apoorva Mehta가 2012년 창업, 스마트폰·모바일 결제 확산이 맞물린 시기. 2015년 \$2B 평가.
- Wikipedia contributors. "마켓컬리." Wikipedia (한국어). 2015년 창업, 샛별배송 서비스, 코로나19 기간 급성장.
- Wikipedia contributors. "쿠팡." Wikipedia (한국어). 소셜커머스에서 로켓배송으로의 전환, 2021년 3월 뉴욕증시 상장.
- Wikipedia contributors. "ChatGPT." Wikipedia. 2022년 11월 30일 공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 2개월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 1억 명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