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창업가 자질평가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낭비하지 마라."
— 스티브 잡스(Steve Jobs),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 (2005)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2005
앞서 스티브 잡스,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 김봉진 같은 창업가의 이야기를 봤다면, 지금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창업가인가?"
정답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정말 창업가의 기질이 있는지 간단하게 가늠해볼 수는 있다. 아래 열 가지 질문은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의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2010년 〈What We Look for in Founders〉에서 제시한 5가지 자질을 출발점으로, 내가 수백 명의 창업가를 만나며 재구성한 heuristic이다.1 심리측정 도구가 아니라 자기 점검의 도구로 사용하길 바란다. '그렇다'는 1점, '아니다'는 0점이다.
- 나는 사업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
- 나는 월급을 못 받아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 그동안 모은 저축을 모두 사업자금으로 쓸 용의가 있다.
- 나는 늘 하던 일보다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 나는 계획하는 것보다 실행하는 게 좋다.
- 나와 함께 창업할 친구나 동료가 한 명 이상 있다.
- 학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그리 좌절하지 않는다.
- 나는 남들에게 무시당해도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 나는 다른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의미를 찾는 편이다.
- 나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편이다.
점수를 합산하고 다음 결과를 보자.
9점 이상 — 지금 당장 창업하세요!
당신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당장의 안정적인 삶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 리스크를 즐기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조언을 귀담아 들으며, 현재 가진 자원만으로도 바로 창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디어와 팀이 있다면 지금 당장 창업하기를 바란다.
5–8점 — 먼저 경험해봐도 늦지 않다
창업에 관심이 많고, 이미 많은 것을 공부한 사람이다. 다만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맹신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주변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통해 좀 더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리스크가 불안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다 짊어지고 어렵게 가기보다는 주변의 뛰어난 창업가와 함께 시작하거나(1장 〈공동창업자〉 참고), 창업동아리, 사내벤처, 또는 초기 스타트업의 초기 직원으로 먼저 경험을 쌓는 것을 권한다. 이 경험은 고스란히 당신의 창업 자산이 된다. (1장 〈창업가 연습〉에서 자세히 다룬다.)
5점 미만 — 창업은 다음 생에
아쉽지만 스스로 창업하는 것보다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혹은 공무원이 더 적성에 맞겠다. 스타트업은 다음 생에 하는 걸로 하자.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창업가정신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건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고, 굉장히 중요하다.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다음 세대를 가르치거나 나라의 일을 하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과거를 답습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창업가정신'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지금 하는 일을 10배 더 개선한다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다.
사실 이 틀을 밖에서 보기에 창업가와 비슷한 성취를 낸 사람은 많다. 포스트잇 메모지를 발명한 3M의 아트 프라이(Art Fry)는 평생 3M 직원이었다. 그는 스스로 회사를 세운 적이 없지만, 한 번 떠오른 아이디어를 12년간 물고 늘어진 끝에 전 세계 사무실의 풍경을 바꿔놓았다.2 의사, 교수, 운동선수, 공무원 중에도 남다른 몰입과 집착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사람들이 많다. 창업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1장 〈괴짜와 창업가〉 참고.)
어떤 사람은 이 결과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자. 이 평가는 통계적 근거를 가지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다. 창업가의 자질이 단 열 개의 질문으로 온전히 드러날 리도 없다.1
다만 이 평가의 가치는 숫자가 아니라 질문 자체에 있다. 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그 이유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다. '월급 없이 살아갈 수 없다'에 0점을 준 사람은 생활의 안전망이 필요한 사람이다. '실행보다 계획이 좋다'에 0점을 준 사람은 신중함이라는 무기를 가진 사람이다. 각각은 약점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조건과 팀에서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학술 연구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스콧 셰인(Scott Shane) 교수는 2003년 저서 《A General Theory of Entrepreneurship》에서 창업 성공이 개인 특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논증했다 — 개인의 자질(individual)과 시장의 기회(opportunity)가 결합하는 지점에서 창업이 성립한다는 '개인-기회 결합' 명제다.3 자기 자질을 평가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어떤 기회 앞에 서 있는지를 함께 보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된다.
그럼 이제부터 왜 내가 이런 질문들을 하는지, 하나씩 풀어보자. 돈, 위험, 공동창업자, 운과 때, 괴짜 기질, 연습 — 창업가를 창업가로 만드는 조건들의 이야기다.
참고 문헌
- Paul Graham. "What We Look for in Founders." paulgraham.com, October 2010. Y Combinator가 설립자에게서 찾는 5가지 자질 — 결단력, 유연성, 상상력, 불편함에 대한 내성, 친구 간의 신뢰 — 은 위 열 가지 질문의 밑바탕이 되는 틀과 맞닿아 있다.
- Wikipedia contributors. "Post-it Note." Wikipedia. 3M의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와 아트 프라이(Art Fry)가 12년에 걸쳐 '접착은 되지만 떨어지는' 실버의 접착제를 상품화한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 Scott Shane. "A General Theory of Entrepreneurship: The Individual-Opportunity Nexus." Edward Elgar Publishing, 2003. 창업가 개인·기회·환경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한 학술 표준서 — 개인 특성만으로 창업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는 'Individual-Opportunity Nexus' 명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