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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괴짜와 창업가

"저항군은 희망을 딛고 일어선다."

— 영화 《스타워즈: 로그 원》 중에서

"Rebellions are built on hope."

Star Wars Rogue One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사무실에서 맨발로 다녔다거나, 애플(Apple) 컴퓨터 개발 당시 "폰트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직원을 즉각 해고해버린 일화는 유명하다.1 그의 기행과 편집증은 함께 일하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집요함이 매킨토시,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을 만들어냈다.

잡스처럼 완벽에 대한 편집증을 겪는 창업가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남다름'을 가진 창업가도 많다. 버진 그룹(Virgin Group)의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이케아(IKEA)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제트블루(JetBlue) 창업자 데이비드 닐먼(David Neeleman)은 모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공개적으로 밝혔다.2 이런 특성은 창업가로 성공하는 데 방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큰 리스크에 끌리는 성향, 특정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몰입하는 집중력, 평범한 사고 바깥으로 튀는 창의성. 여타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다.

이 연결은 단순한 인상평이 아니다. 베르헐(Verheul) 등 2015년 《Small Business Economics》에 발표한 연구는 1만 104명의 고등교육생을 대상으로 한 실증 분석에서, ADHD 유사 행동 수준이 높을수록 창업 의도가 더 강하고 위험 감수 성향이 그 관계를 부분 매개함을 보여줬다.6 산만함·과잉 에너지·충동성이 일반 조직에서는 페널티이지만, 창업 환경에서는 미지의 문제로 뛰어들게 하는 연료가 된다.

창업가는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정의한다. '9시 출근, 6시 퇴근' 같은 기본적인 규칙에도 "왜?"라고 반문하며 다른 방법을 찾는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화학에 미쳐서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수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실험실에 널려 있는 약품과 실험기구만이 내가 관심을 갖는 세상이었다. 더 정확히는 폭발물 만드는 데 미쳐 있었다. 책에서 배운 공식대로 여러 종류의 폭발물을 만들어 성공했을 때의 희열은 십 대 소년이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었다. 몇 번은 실험실에 불이 나 소화기로 불을 꺼야 했고, 그 후로 소화기는 항상 손 닿는 곳에 두었다. 한 번은 작정하고 만든 고체 폭탄이 생각보다 크게 터져 학교 건물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물론 안전하게 운동장에 묻어두고 폭발시켜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나름의 '지하 실험'이었다고 해두자.) 그 사건으로 교장실에 불려갔고, 급기야 아버지까지 호출당해 면담을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 몰입이 창업가로서의 기초였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일에 끝까지 파고들어본 경험,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이후 스타트업에서 누구보다 끈질기게 한 문제에 매달릴 수 있었다.


노정석은 대학 시절 해킹에 몰두하느라 수업은 뒷전이었고, 결국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KAIST와 포항공대 동아리 간에 벌어진 해킹 전쟁 '사과전쟁'에 연루되어 구치소까지 다녀왔고, 부모님은 물론 학교의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그 문제아 시절의 몰입과 경험을 밑바탕으로 선배들과 함께 보안회사를 창업해 기업공개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2006년 블로그 서비스 회사 태터앤컴퍼니(TNC)를 창업해 구글(Google)에 매각하고, 이어서 모바일 데이터 분석회사 파이브락스(5 Rocks)를 창업해 2014년 탭조이(Tapjoy)에 매각했다.3 그 와중에 티몬, 미미박스, 다노 등 한국의 주요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하며 성공적인 엔젤 투자자가 되었다. 남들이 멀리했던 경험, 실패로 치부했던 이력들이 창업가로서의 자산이 된 것이다.


김동신(센드버드 Sendbird)은 한 가지에 광기 어릴 정도로 몰두한 전형이다. 서울대 재학 시절 게임에 빠져 프로게이머가 됐고, 1년 만에 국내 1위·세계 3위에 올랐다. 대한민국에서 자기보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졸업과 동시에 엔씨소프트에 다니다 게임 회사 파프리카랩(Paprika Lab)을 창업해 일본 게임 회사에 매각했다. 그 후 창업한 센드버드(Sendbird)는 앱 내 실시간 채팅을 API로 제공하는 B2B 인프라 회사로, 국내 스타트업 사상 두 번째로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선정되며 실리콘밸리에 진출했다. 현재 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유니콘으로 평가받는다.4


이두희(멋쟁이사자처럼)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중퇴생이다. 흔히 '천재 해커'로 알려져 있지만, 대학 입학 당시엔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프로그래밍 실력에 자신감을 잃고 방황했다. 그러다 수강 시간표와 교수 평가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보면서 코딩의 '의미'를 깨달았다. 몇 줄짜리 코드로 세상을 더 쉽고 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빠져들었다. 서울대 재학 중 학교 학생정보시스템의 보안 허점을 파고들다 배우 김태희의 사진을 해킹하는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러한 경험을 한 뒤 그는 자신이 찾은 코딩의 의미를 친구와 후배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멋쟁이사자처럼이다. 처음에는 대학 캠퍼스에 포스터 한 장을 붙이고 찾아온 20여 명으로 시작한 수업이, 이듬해 180명, 그다음 해 500명으로 늘었다. 졸업생들이 '자소설닷컴', '비프로(Bepro)', 해외 송금 서비스 '센트비(Sentbee)' 등 수십 개의 스타트업을 만들어냈다. 2016년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한 후 같은 해 구글 임팩트 챌린지(Google Impact Challenge)에서 우승했다.5


이처럼 창업가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시선, 다른 몰입,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의 기행과 집착, 남다른 취향은 때로는 사회에서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바로 그 괴짜들의 아이디어와 행동이야말로 새로운 시장과 기술, 문화를 창조해내는 원동력이다.

창업가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규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기존의 질서를 낯설게 보고, 남들이 외면한 구석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며, 누구보다 깊이 파고드는 사람. 그들이 바로 창업가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그런 괴짜들이 만든 세계 위에 세워져 왔다.

(이런 괴짜 기질이 어떻게 '연습'을 통해 창업가의 실력으로 바뀌는지는 1장 〈창업가 연습〉에서, 그들의 행동이 시장의 파도와 어떻게 만나는지는 1장 〈운과 때〉에서 다뤘다.)

참고 문헌

  1. Wikipedia contributors. "Steve Jobs." Wikipedia. 잡스의 경영 스타일 — 맨발 근무, 완벽주의, 팀원들과의 갈등 일화.
  2. Wikipedia contributors.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Wikipedia. ADHD가 특정 직업군(창업가 포함)의 과업 몰입·위험 감수 성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관련 연구 요약.
  3. 노정석의 연쇄 창업 이력(보안 회사 IPO, 태터앤컴퍼니 → Google 매각, 파이브락스 → Tapjoy 매각)은 당시 한국 및 해외 언론(이데일리, TechCrunch, Bloomberg 등)의 다수 보도로 확인된다. 공식 Wikipedia 항목은 2026-04 시점 부재.
  4. Sendbird. "Sendbird — Conversations & AI Agents for Apps." Sendbird. 2013년 김동신·이상엽 공동창업, B2B 실시간 메시징 API 제공, 2021년 \$1B+ 유니콘 평가.
  5. Wikipedia contributors. "멋쟁이사자처럼." Wikipedia (한국어). 이두희 창립, 2013년 비영리 시작, 2016년 구글 임팩트 챌린지 우승.
  6. Ingrid Verheul, Joern Block, Katrin Burmeister-Lamp, Roy Thurik, Henning Tiemeier, Roxana Turturea. "ADHD-like behavior and entrepreneurial intentions." Small Business Economics 45(1), 85–101, 2015. 10,104명 고등교육생 대상 실증 — ADHD-like 행동과 창업 의도의 정(+) 상관. DOI 10.1007/s11187-015-96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