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가난은 스타트업의 경쟁력
"가난은 혁신을 부른다."
— 제프 베조스(Jeff Bezos), 아마존 창업자
"Frugality drives innovation."
— Jeff Bezos, Founder of Amazon
창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창업을 못 했다는 말은 변명거리도 안 된다. 앞 글에서 본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김봉진처럼, 진짜 창업가는 자원이 없으면 발품을 팔아 해결한다. (1장 〈나는 창업가일까?〉 참고.)
정작 위험한 건 돈이 있는 창업가다.
스타트업 A는 투자자들에게 "10억 원을 투자받으면 인재를 채용하고 마케팅비를 더 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다른 경쟁사가 20억 원을 투자받아 더 적극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보게 된다. 스타트업 A는 곧 투자자에게 달려가 20억 원을 더 달라고 한다.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해서 시장 1위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대기업이 새로 시작한 100억 원짜리 마케팅 캠페인에 처참히 당하고 만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누가 돈을 더 많이 쓰느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투자금, 더 많은 인원, 더 많은 마케팅 예산. 이런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성공 요인이 된다면 돈과 인력에서 앞서는 대기업이 무조건 시장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돈을 적게 쓰는 데에서 나온다. 경쟁사가 더 많은 인원과 더 많은 마케팅비로 당신 회사를 이기는 것은 쉽다. 하지만 당신 회사가 제조원가를 경쟁사의 1/10로 유지하고, 마케팅비로 0원을 쓰면서도 고객 획득에 성공한다면, 경쟁사는 당신을 이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경쟁우위다.
2017년 가을, 울산에서 창업한 대학생 스타트업 '페달링(Pedalling)'의 공대선 대표는 공동창업자 세 명과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입시준비생과 대학생 과외 선생님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운영이 어려워졌다. 회사에는 겨우 한두 달 버틸 돈만 남아 있었고, 스스로의 미션도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회사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섰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시장의 요구를 분석해 열 가지가 넘는 실험을 설계했다. 아이돌봄, 일반인 전문가의 강의 플랫폼 등이 후보에 올랐다. 촉박한 시간과 바닥난 통장 때문에 제대로 된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들 시간도 없었다. 대신 서비스를 설명하는 페이스북 광고를 돌리고, 그 광고를 보고 들어오는 사용자들을 받을 수 있는 간단한 랜딩 페이지만 만들었다. 사용자가 신청할 때마다 창업자들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리도록 설정했다.
얼마 후, 그 알림이 오기 시작했다. 창업자들이 밥을 먹는 동안 알림이 점점 잦아졌고, 급히 사무실로 돌아와 데이터를 들여다본 그들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같은 소소한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 베타 앱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콘텐츠가 문제였다. 일단 유튜브에 있는 커피 내리기 영상을 큐레이션해 올렸다. 원두 고르기, 갈기, 내리기 순서로 배열해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때 앱 이름도 페달링에서 클래스101로 바꿨다. 베타 앱은 꽤 인기를 끌었고, 곧 그들은 정식 서비스를 준비했다. 독특한 증명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시현하다를 섭외해 '내 강아지·고양이 증명사진 찍는 법' 수업을 만들었다. 2018년 봄 정식 서비스를 론칭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입소문이 퍼졌다. 매출이 나기 시작했고, 그림 그리기, 손뜨개, 케이크 만들기 수업도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시작한 클래스101은 1년여 만에 누적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고 대형 벤처캐피털로부터 1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1
만약 페달링이 처음부터 수십억 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기존 아이디어를 고치지 못한 채 마케팅비에 돈을 쓰다가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돈이 없었기에 열 가지 실험을 하루 만에 돌려야 했고, 그래서 가장 빨리 진짜 시장을 찾아냈다.
해외에도 같은 결의 이야기가 있다. 미드저니(Midjourney)는 2022년 데이비드 홀츠(David Holz)가 독립 연구소 형태로 출시한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다. 구글·오픈AI(OpenAI)처럼 수조 원의 투자금이나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있는 회사가 아니었다. 2023년 기준 정규직은 약 11명, 외부 투자는 받지 않았고, 디스코드(Discord) 서버 하나로 제품을 운영했다. 그럼에도 출시 1년 만에 연간 반복매출 2억 달러를 넘었다. 작은 팀이 집요하게 이미지 생성에만 집중했고, 군살이 없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2
수천 명이 수조 원을 쓰는 회사와, 열 명이 노트북 몇 대로 움직이는 회사가 같은 시장에서 싸울 때, 실제 이기는 쪽이 어디인지는 지난 몇 년간 AI 업계가 보여준 바 그대로다.
자본이 없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이다. 한정된 자원은 창업가를 천재로 만든다. 돈이 더 들어왔을 때 무엇을 할지 상상하기 전에, 지금 가진 만원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부터 물어보자.
물론 이 원칙이 모든 사업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콘텐츠·서비스처럼 자본 집약도가 낮은 영역에서는 '가난'이 창의력의 연료가 되지만, 반도체 장비·콜드체인 물류·생명과학 임상 같은 영역에서는 적정 자본 확보 자체가 생존 조건이 된다. 경쟁력의 본질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돈에 의존하지 않는 설계'다. ('실행'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2장 〈원대한 아이디어보다 하찮은 실행이 낫다〉에서 다룬다. '때'를 정확히 잡는 문제는 1장 〈운과 때〉에서 이어진다.)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빨리 개발하는 방법론이다. 시장에 대한 가정을 정의하고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 테스트를 반복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에릭 리스(Eric Ries)가 2011년 저서 《The Lean Startup》에서 Build–Measure–Learn 루프와 Validated Learning을 중심으로 이 방법론을 체계화했다.3
참고 문헌
- Class101. "About Class101." class101.net. 페달링에서 클래스101로의 피벗과 2017–2018년 초기 성장, 강의 콘텐츠 플랫폼으로의 진화가 소개되어 있다.
- Wikipedia contributors. "Midjourney." Wikipedia. 데이비드 홀츠의 2022년 독립 연구소 설립, 외부 투자 없음, 2023년 약 2억 달러 연간 반복매출, 소규모 정규직 팀 구성.
- Eric Ries. "The Lean Startup: How Today's Entrepreneurs Use Continuous Innovation to Create Radically Successful Businesses." Crown Business, 2011. 린 스타트업 방법론의 원전 — Build-Measure-Learn 루프, MVP, Validated Learning.